메뉴

속 문드러진 홍합에 어민들 속 문드러진다

[르포] 남해안 양식 홍합 집단폐사 현장

창원 진동·거제·통영·고성 등 심한 어장은 최대 90%까지 폐사

기사입력 : 2020-08-09 16:38:33

"눈물도 흐르지 않고 그냥 멍합니다. 이제 뭘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요"

7일 오전 10시 40분께 창원 광암항. 이곳에서 만난 홍합 양식 어민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어둡기만 했다. 무슨 일이 생긴거냐고 묻는 기자에게 이들은 "직접 보면 안다"며 배로 안내했다.

20t급 홍합 수확 선박을 타고 15분가량 나가자 바다를 가득 메우고 있는 수천 개의 부표가 눈에 들어왔다. 한 양식시설에서 수하연(홍합이 매달려 자랄 수 있도록 바다 속으로 드리워놓는 줄) 하나를 배와 연결해 들어올렸다.

7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만 홍합 어장에서 한 어민이 집단폐사한 홍합을 들어보이고 있다. 폐사한 홍합에서 썩은 진액이 흘러내리고 있다./김승권 기자/
7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만 홍합 어장에서 한 어민이 집단폐사한 홍합을 들어보이고 있다. 폐사한 홍합에서 썩은 진액이 흘러내리고 있다./김승권 기자/

수하연이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입을 다문 홍합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하연 상부 홍합의 상태는 멀쩡해 보였지만, 그중 하나를 까보니 부패한 속살과 함께 참을 수 없는 악취가 진동했다.

총 길이 7.5m의 수하연을 계속해서 들어올리자 2m지점부터는 입을 닫고 있는 홍합을 찾아볼 수 없었다. 수하연에 다닥다닥 붙은 홍합들은 전부 벌어져 있었으며, 그 틈새로 녹아내린 살과 진물이 물처럼 흘러내렸다. 코를 찌르는 악취에 두통이 밀려왔다.

최근 창원 진동·거제·통영·고성 등 남해안에서 양식 홍합들의 줄폐사가 이어지고 있다. 피해가 심한 어장은 최대 90% 이상의 홍합이 폐사하는 등 피해가 심각하지만, 어민들 사이에서 많은 장맛비로 인한 담수 유입과 빈산소 수괴 등의 추정만 나올 뿐 경남도 차원에서 원인을 명확히 규명하지는 못했다.

진동만에서 30년 이상 홍합 양식업에 종사한 어민 등에 따르면 홍합 폐사는 매년 있었지만, 올해처럼 광범위한 지역에서 대규모로 폐사한 것은 처음이다.

어민들은 당장 올 홍합 농사를 망치면서 입은 피해에 망연자실한 분위기다.

7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만 홍합 어장에서 집단폐사한 홍합에서 진액이 흘러내리고 있다./김승권 기자/
7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만 홍합 어장에서 집단폐사한 홍합에서 진액이 흘러내리고 있다./김승권 기자/

홍합 양식과 함께 상사를 운영하는 한 어민은 "우리 어장의 경우 한해 총 수익이 30억원가량 된다. 여기서 인건비·유지비 등을 벌충하면 남는 것은 많지 않은데, 이번에 90%의 홍합이 폐사했다"면서 "이번 폐사 원인으로 짐작되는 빈산소 수괴는 보험적용도 되지 않는다. 수협보험은 태풍·강풍에 의한 피해만 보상이 되고, 나머지는 특약을 들어야 하는데 너무 비싸 가입한 어민이 1%도 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문제는 이번 사태로 내년 가을 수확을 위해 채묘(수하연 등을 이용해 바다 속에 떠다니는 치패를 모으는 것)했던 새끼 홍합들이 모두 폐사하면서 내년 농사까지 망치게 됐다는 것이다. 홍합 양식은 1년에 봄, 가을 두 번에 걸쳐 채묘해 가을에 바다로 넣고 이듬해 가을~겨울 수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도내 홍합 양식 어민들이 다시 홍합을 수확해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빨라도 2022년 가을은 돼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폐사한 홍합을 털어내고 부표·수하연 등 장비를 수거하는 데도 큰 비용과 인력이 드는데, 이 역시 온전히 어민들의 몫이다. 홍합 수확 선박이 있는 어민들은 상황이 나쁘지 않지만, 장비가 없는 대다수 어민들은 손으로 일일이 홍합을 떼내야 한다. 평소 홍합 출하 시기에는 장비를 가진 상사에 홍합을 팔고 그 과정에 상사에서 홍합을 털어가 주지만, 폐사한 홍합을 털어내는 것은 이윤이 남지 않아 돈을 줘도 장비를 빌리기가 힘들다.

한 영세어민은 "처음 홍합 폐사를 확인하고 나서는 집 안에 틀어박혀 며칠 동안 술만 마셨다. 하지만 더 이상 실의에 빠져있을 시간도 없다"면서 "장비들을 수거하지 않으면 굴·오만둥이 등이 달라붙어 나중에는 더 힘들어진다. 폐사한 홍합들을 보면 피눈물이 나겠지만, 다시 바다로 나가야 한다"고 전했다.

7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만 홍합 어장에서 집단폐사한 홍합에서 진액이 흘러내리고 있다./김승권 기자/
7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만 홍합 어장에서 집단폐사한 홍합에서 진액이 흘러내리고 있다./김승권 기자/

날이 갈수록 더해지는 피해 규모에 어민들은 시설 철거비용과 인력 지원·정책자금 등 대출금 원금 상환기일 연기 등 현실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경남도와 각 시군에서는 피해 규모 조사와 원인 규명에 나섰다. 이번 사태의 원인이 빈산소수괴로 밝혀질 경우 농어업재해대책법에 따라 피해 어민들이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경남도 어업진흥과 관계자는 "오는 12일까지 각 시군에서 피해 신고를 접수받고 있다. 현재도 계속해서 피해 규모가 커지고 있기 때문에 정확한 파악은 끝나지 않았지만, 피해 규모가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해수 시료를 채취해 국립수산과학원 남동연구소에 보냈다. 빈산소 수괴로 인한 폐사는 피해 규모에 따라 1인당 최대 5000만원과 대출금 상환일 연기·이자 감면 등의 지원을 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한얼 기자 leehe@knnews.co.kr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이한얼 기자의 다른 기사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