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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기획] 나왔다하면 완판… 치솟는 ‘굿즈’ 인기

새벽에도 줄 선다, 널 갖기 위해서라면

굿즈가 대체 뭐길래

기사입력 : 2020-08-10 21:34:34

#대학생 윤지은(24·창원시 의창구)씨는 스타벅스의 ‘서머 레디백’을 받기 위해 매장에 갔다가 몇 차례 헛걸음을 해야 했다. 매장에 갈 때마다 번번이 가방 물량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직장인 연재호(34·창원시 진해구)씨는 던킨에서 1만원 이상 구입하면 8900원에 폴딩박스를 준다는 공지를 봤다. 한정판에다가 유명 캠핑 브랜드인 ‘노르디스크’와 협업한 제품이라는 이야기에 홀린 듯 매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던킨도너츠 굿즈 캠핑박스
던킨도너츠 굿즈 캠핑박스

최근 ‘굿즈’를 내놓자마자 품귀현상을 빚는 대란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굿즈가 뭐 길래 이토록 열광하는 걸까. 주연(본품)보다 더 잘나가는 조연, 굿즈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무궁무진한 ‘굿즈’= ‘굿즈(goods)’는 아이돌, 영화, 드라마, 소설, 애니메이션 등 문화 장르 팬덤계 전반에서 사용되는 용어다. 해당 장르에 소속된 특정 인물이나 그 장르와 인물의 아이덴티티를 나타낼 수 있는 모든 요소를 주제로 제작된 상품이나 용품을 뜻한다.

굿즈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1990년대 인기 있는 뮤지션의 팬임을 알리는 물증이 굿즈의 시작이었다. 이런 물건에는 흔히 좋아하는 연예인의 이름이나 얼굴, 로고가 대문짝만하게 찍혀 있었다.

옛 잡지의 부록인 굿즈도 있다. 잡지를 사면 유명 브랜드를 내세운 패션소품이나 연예인 관련 상품을 사은품으로 증정했고, 그 사은품을 얻기 위해 잡지를 사는 이들이 많았다. 빵 봉지 속에 인기 만화 캐릭터나 연예인의 스티커가 들어있어 스티커를 모으기 위해 빵을 사먹게 만들었던 ‘포켓몬 빵’, ‘핑클 빵’, ‘국진이 빵’도 굿즈의 조상격이다.

그중에서도 강렬하게 인기를 끈 굿즈의 주인공은 ‘펭수’다. EBS의 유튜브 스타 펭수는 특유의 귀여운 매력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펭수 굿즈를 만들어달라는 팬들의 요청이 유튜브 상에서 이어졌고, 그렇게 세상에 나온 펭수 관련 상품들은 많은 관심과 인기를 끌었다.

펭수 피규어
펭수 피규어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굿즈인 롱패딩, 스니커즈도 품귀 현상을 빚었다.

‘평창 롱패딩’이라 불렸던 이 구스 롱 다운 점퍼는 3만 벌밖에 제작되지 않은 한정판이라는 점과 함께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수입 브랜드의 패딩 점퍼와 비교해 가성비가 뛰어난 제품으로 완판됐다. ‘평창 스니커즈’의 경우 예약 물량도 전체 초도 물량 5만 켤레의 60%인 3만 켤레를 돌파했다.

출판 시장에서도 ‘도서 굿즈’가 화제다. 책에 나오는 캐릭터나 문장, 표지 디자인 등을 따서 만드는 도서 굿즈의 상당수는 공짜 사은품이다. 몇 가지는 따로 살 수 있지만, 대부분은 이벤트 도서를 포함해 일정 금액 이상의 도서를 구매하면 부록으로 준다. 굿즈 상품은 탁상시계, 북 램프, 투명컵, 책갈피, 책 베개 등으로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다. SNS상에서는 ‘굿즈 구경하러 왔다가 책을 사게 됐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최근에는 싹쓰리(유재석, 비, 이효리로 구성된 혼성그룹) 돌풍에 힘입은 ‘뉴트로’가 옛 감성을 자극하며 대중의 취향을 저격했다. 국내서 공개된 피지컬 앨범과 싹쓰리와 컬래버레이션으로 나온 굿즈도 완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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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굿즈 책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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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쓰리 굿즈 상자

◇코로나 불황이 낳은 ‘굿즈 대란’= 지난 5월 서울의 한 스타벅스 매장에서 한 고객이 커피 300잔을 한꺼번에 구매한 뒤 서머 레디백 17개만 받고 돌아가 커피가 모두 폐기처분된 일이 있었다. 또 가장 저렴하고 양이 적은 에스프레소 14잔을 텀블러에 가득 채우는 방식으로 스티커를 모으는 사례도 있었다.

스타벅스 굿즈 서머레디백
스타벅스 굿즈 서머레디백

굿즈를 손에 넣기 위해 본품을 사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이른바 꼬리(굿즈)가 몸통(실적)을 흔드는 ‘웩더독(Wag the Dog)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업계에선 코로나19의 불황으로 인해 한정판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소유욕이 반영되면서 나타난 변형된 명품 소비 현상으로 분석했다. 굿즈 현상은 팬덤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이제 팬덤 영역 밖으로 확장되고 있는 추세다.

굿즈 대란을 주도하는 소비층은 MZ세대(1980~2000년대 출생한 세대)다. 이들은 내 관심사와 트렌드를 반영할 수 있는 제품이라면 새벽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거나 시간과 비용을 아끼지 않는다. 스타벅스의 굿즈만 모은다는 이수경(36·창원시 성산구)씨는 “사실 굿즈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디자인과 실용성이 좋을 뿐만 아니라 이왕 돈 쓸 거 증정품이라도 받자는 승부욕이 발동해 매번 이벤트에 도전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한정판 제품들은 시기가 지나면 살 수 없기 때문에 나왔을 때 득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이런 현상을 두고 “매일 매장에서 음료를 먹는 이들에겐 합리적인 프리퀀시(쿠폰 제도)겠지만 이걸 받기 위해 먹으러 가는 건 비합리적인 낭비일 뿐”이라고 일침을 놓는 이도 있다.

이들에게 굿즈의 가치를 담보하는 것 중 하나는 언제든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 ‘리미티드 에디션(한정판 제품)’이라는 점이다. 지금 이때, 바로 이곳이 아니면 구할 수 없는 것으로 일종의 시즌 물품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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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굿즈 서머체어

◇변형된 소비 문화 ‘굿즈 리셀’= 한정판 굿즈가 많아지면서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굿즈 재판매 게시글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자신에게 필요 없는 이벤트 제품들을 팔고 원하는 소비자들은 쉽게 구매할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지만 지나친 웃돈 거래가 성행하는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더욱이 인기가 많은 한정판 제품의 경우 다시 재판매하는 ‘리셀러’들이 제품을 선점하면서 정작 꾸준한 충성고객들은 이벤트에서 밀려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실제로 스타벅스 ‘서머 레디백’은 한 인터넷 중고 사이트에서 6~9만원 안팎의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다. 행사 대상 음료 중 최저 가격 음료를 샀을 경우 지불해야 하는 커피 가격보다 더 비싸게 무료 증정품이 판매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개점 21주년을 기념해 내놓은 장우산 굿즈도 당일 품절됐다. 2만5000원에 판매된 장우산은 중고시장에서 4만5000원~5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이에 대해 스타벅스는 웃돈을 받고 증정품을 되팔아 수익을 올리는 현상을 올해는 근절할 수 있도록 증정품 수량을 넉넉하게 준비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스타벅스 굿즈 장우산
스타벅스 굿즈 장우산

이 같은 문제는 굿즈 마니아들 사이에서 꾸준히 지적돼 왔다. 고객을 위한 행사가 리셀러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것이다. 시장에 수요가 있는 한 리셀(산 물건을 되파는 행위) 문화가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인당 구매 개수를 제한하는 등의 제도적인 보완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주재옥 기자 jjo5480@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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