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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낡은 냄비 ‘예술’이 됐다

무쇠 솥단지·프라이팬·밥그릇 등

도민에 기부받은 그릇 220여개로

기사입력 : 2020-09-20 21:57:25

경남 도민들의 사연이 담긴 수백개 그릇들이 24m 높이의 예술작품으로 재탄생했다.

지난 19일 경남도립미술관 앞 광장에는 낡은 냄비와 프라이팬, 그릇들을 하늘 높이 쌓아 올린 정체 불명의 조형물이 설치됐다. 대형 무쇠 솥단지부터 작은 밥그릇까지 그릇 수만 220여개, 높이는 아파트 8층 규모다. 오고 가는 시민들에게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이 조형물은 경남도립미술관에서 하반기 특별전 ‘살어리 살어리랏다’을 준비 중인 최정화 작가가 설치한 것이다. 작품 제목은 ‘인류세'(Anthropocene,2020)다.

최정화 작가가 집에서 쓰지 않는 그릇을 도민으로부터 기부받아 경남도립미술관 앞 광장에 설치한 24m 높이의 작품 ‘인류세’./김승권 기자/
최정화 작가가 집에서 쓰지 않는 그릇을 도민으로부터 기부받아 경남도립미술관 앞 광장에 설치한 24m 높이의 작품 ‘인류세’./김승권 기자/

도립미술관과 최 작가는 이 작품을 위해 지난 7월 도민들을 상대로 ‘모아모아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도민 617명에게 집에서 쓰지 않는 그릇을 기부 받았다. 그렇게 모인 그릇들이 크기별로 분류돼 긴 탑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최 작가는 도내 곳곳의 부엌에서 쓰였던 그릇들이 연결된 이 작품에 대해 ‘경남만의 거대한 기록’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실제 모아모아 프로젝트 당시 도민들은 ‘신혼집 첫 살림, 가족의 선물, 생애 첫 밥그릇’ 등 그릇마다 애틋한 각자의 사연을 담아 기부했다. 작가는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생의 필수품인 식기류의 연결을 통해 우리의 먹고사는 문제가 인류세에 어떤 변화를 초래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아찔한 높이의 ‘인류세’는 지난 17일부터 3일에에 걸쳐 공사를 통해 안전하게 설치됐다. 미술관에 따르면 식기류는 긴 파이프를 통해 연결했으며, 조형물 아래 땅을 파고 지지대를 심어 움직이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했으며, 조형물 주변 4곳에 앙카를 콘크리트로 심어 조형물을 지지하게 만들었다.

도립미술관 관계자는 “미술관이 임시휴관 하면서 최정화 작가의 권유로 작품을 예정보다 이르게 선보이게 됐다”며 “최정화 작가와 도민들이 함께 만든 작품을 통해 코로나 19 시대에 지친 도민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경남도립미술관 하반기 특별전인 최정화 작가의 ‘살어리 살어리랏다’는 오는 10월 22일 개막할 예정이다. 최 작가는 국내외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대표적 현대작가로 플라스틱 제품이나 재래시장 물건 등 누구에게나 익숙하고 흔한 것들을 자신의 작업에 끌어들여 일상과 예술, 비예술과 예술의 경계를 없애는 작품을 지속하며 한국 현대미술의 지평을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대구미술관 등 국내 주요 미술관뿐 아니라 핀란드 키아스마 현대미술관, 이탈리아 로마 국립현대미술관 등 유명 해외 미술관에도 다수 소장돼 있다.

조고운 기자 lucky@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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