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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일 2돌, 갈 길 먼 진상규명 (상) 진상규명 핵심 쟁점은

항쟁 가해자 밝혀야 진실도 밝혀진다

기사입력 : 2020-10-15 20:50:38

1979년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에 반대해 부산과 마산에서 일어난 ‘부마민주항쟁’은 유신독재를 종식시킨 결정적 도화선이 된 민주화운동으로 평가받는다.

우리 현대사에 있어서 가장 빛나는 민주화운동 역사 중 하나로 지난해 항쟁 40주년에 맞춰 국가기념일로 지정되면서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지만, 항쟁의 전모는 여전히 드러나지 않는 등 미완으로 남아 있어 진상규명 과제도 적지 않다.

본지는 부마민주항쟁 41주년과 국가기념일 지정 2돌을 맞아 올바른 역사적 평가를 위한 진상규명의 쟁점과 남은 과제는 무엇인지 2회에 걸쳐 짚어본다.

15일 창원 오동동문화광장에서 심이성(가운데) 작가와 관계자들이 부마민주항쟁 41주년 상징조형물 ‘움트는 자유’를 설치하고 있다. 민주주의 실현까지 아픈 역사를 딛고 꿋꿋이 솟아나는 새싹처럼 마산인의 불굴의 정신을 표현한 조형물의 제막식은 18일 부마민주항쟁 창원시 기념식과 함께 열린다./김승권 기자/
15일 창원 오동동문화광장에서 심이성(가운데) 작가와 관계자들이 부마민주항쟁 41주년 상징조형물 ‘움트는 자유’를 설치하고 있다. 민주주의 실현까지 아픈 역사를 딛고 꿋꿋이 솟아나는 새싹처럼 마산인의 불굴의 정신을 표현한 조형물의 제막식은 18일 부마민주항쟁 창원시 기념식과 함께 열린다./김승권 기자/

◇진상규명 경과= 부마민주항쟁 관련 단체의 끈질긴 노력 끝에 지난 2013년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지면서 이듬해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 및 관련자 명예회복심의위원회’(이하 진상규명위원회) 출범으로 진상규명의 기대감을 높였다.

그러나 유신독재를 찬양한 인사들이 위원으로 포함됐다는 비판을 받는 등 위원 구성 부적절성과 비전문성 논란이 벌어졌다. 위원회측의 조사 과정에서 부실하고 부당한 조사가 있었다며 남부희(전 경남신문 상무이사) 위원이 항의성 사퇴를 하기도 했다. 이후 2018년 2월 발표한 정부차원의 첫 공식 보고서는 ‘졸속’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은 끝에 채택되지 못했다.

부마민주항쟁
부마민주항쟁 당시 마산역 앞 시위 모습.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제공/

위원회가 항쟁을 바라보는 관점과 함께 진상조사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지난 2018년 3월 현재의 2기 위원들이 위촉되었고 햇수로 4년이 지나서야 진상규명도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항쟁 당시 사망한 고 유치준씨(당시 51세)에 대한 재조사를 이끌어낸 끝에 40년 만인 지난해에 공권력의 폭력에 억울하게 죽은 항쟁의 유일한 사망자로 인정받을 수 있게 했다.

진상규명위원회는 20대 국회가 지난 5월 마지막 본회의에서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위상도 달라졌다. 부마민주항쟁 정의가 달라진 것은 물론 관련 피해 사실을 인정받을 수 있는 범위도 넓어졌다. 진상조사위원회 출석요구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2회 이상 출석요구에 따르지 않으면 위원회 의결로 동행명령장을 발부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조사권도 보다 강화됐다. 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기한도 내년 6월 8일까지로 1년 연장됐다.

14일 오후 창원시청 시민홀에서 열린 2020년 부마민주항쟁 사회포럼에서 참석자들이 세부 주제별 토론을 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14일 오후 창원시청 시민홀에서 열린 2020년 부마민주항쟁 사회포럼에서 참석자들이 세부 주제별 토론을 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쟁점은 가해자 조사·사망 은폐 규명= 허진수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전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장)은 부마민주항쟁에 대한 진상조사가 제대로 이뤄져 그 역사적 의의를 바로세우기 위해서는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해자 조사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허 위원은 지난 14일 기자와 만나 “죄를 묻기 위해서가 아니라 항쟁의 전모를 밝히기 위해서는 국방부, 경찰, 국정원(당시 중앙정보부), 청와대 등 당시 권력기관의 가해를 조사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며 “이를테면 군의 편의대 활동과 시위대 진압을 위한 진압작전 등이 담긴 작전 일지를 확보한다면 관련자를 더 찾을 수 있을 것이고, 이를 통해 피해 규모나 당시 상황을 더욱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해 경남대에서 열린 40주년 기념식에서 “숫자로만 남아있는 항쟁의 주역들과 피해자들이 자신의 이름을 찾고 명예를 회복하도록 할 것이며, 국가폭력 가해자들의 책임 소재도 철저히 규명하겠다. 이제 와서 당사자를 문책하자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우고자 하는 것이다”고 강조한 바 있다.

부마민주항쟁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10월 16일 오전 경남 창원시 경남대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제40주년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마친 후 옥정애 마산시위 참여자를 격려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 유치준씨가 항쟁의 유일한 사망자로 인정받았지만, 사망을 은폐한 경위를 규명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 고 유치준 씨는 1979년 항쟁 당시 본지(당시 경남매일)의 취재기록이 10년 뒤인 1989년 부마항쟁기념사업회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사업회 등에서는 그동안 자체조사 결과 고인이 경찰 폭행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고 유족, 지역 시민사회와 함께 사망자 인정을 위해 애써왔다.

허 위원은 “사망자로 인정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경찰이 이를 은폐한 경위는 당사자들이 증언을 거부하거나 밝혀내지 못해 아직 충분히 나오지 않았다”고 아쉬워했다.

추가 사망자 조사 등 집중 조사 과제가 산적한 것은 물론 전두환씨에 대한 조사도 필요해 보인다.

차성환 진상규명위원회 상임위원은 15일 통화에서 “유치준 사망 사건 경찰 은폐 경위는 물론이고 부산에서 발생한 계엄군 전차와 택시 충돌 사건, 항쟁 관련 연행자 대상 인권침해, 계엄사령부의 언론 통제 실체, 항쟁이 타 지역에 미친 영향도 들여다봐야 한다”며 “추가 사망자가 있을 가능성이 있는데 아직 단서를 찾지 못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허진수 위원은 또 “당시 박정희 정권이 계엄령을 선포하고 공수 부대를 투입시켜 시민들을 진압한 과정에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현장에서 직접 지휘한 사실이 군사기록을 통해 확인된 바 있다”며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뿐 아니라 부마항쟁과도 관련이 있는 만큼 조사단을 구성해 전두환씨에 대한 조사도 필요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15일 오후 창원시 오동동문화광장에서 심이성(맨왼쪽) 작가와 관계자들이 부마민주항쟁 41주년 상징조형물 '움트는 자유'를 설치하고 있다. 민주주의 실현까지 아픈 역사를 딛고 꿋꿋히 솟아나는 새싹처럼 마산인의 불굴의 정신을 표현한 조형물의 제막식은 18일 오후 4시 부마민주항쟁 창원시 기념식과 함께 열린다./김승권 기자/
15일 오후 창원시 오동동문화광장에서 심이성(맨왼쪽) 작가와 관계자들이 부마민주항쟁 41주년 상징조형물 '움트는 자유'를 설치하고 있다. 민주주의 실현까지 아픈 역사를 딛고 꿋꿋히 솟아나는 새싹처럼 마산인의 불굴의 정신을 표현한 조형물의 제막식은 18일 오후 4시 부마민주항쟁 창원시 기념식과 함께 열린다./김승권 기자/

도영진 기자 doror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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