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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갈등(葛藤)- 신서영(수필가)

기사입력 : 2020-10-19 20:40:49

친구 내외를 오랜만에 만났다. “갈등이란 말이 왜 생겼냐하면 칡 줄기는 오른쪽에서 감고 등나무 줄기는 왼쪽에서 감아 서로 꼬인다는 뜻이에요. 매사가 꼬인다는 것이지요.”, “같은 식물끼리 서로 꼬인다는 것은 화합을 뜻하는 게 아닐까요.” 친구 남편의 말에 웃으며 말했다.

봄이면 뒷산에서 뻗어 내린 칡넝쿨이 줄기 끝을 코브라처럼 세워 무엇이든지 휘감으려고 안달을 부렸다. 새순의 야들한 연둣빛 줄기에는 보송한 솜털이 나서 아기 손처럼 부드럽다. 칡넝쿨은 잘 세팅된 여인의 긴 머리카락처럼 옆의 감나무가지를 오른쪽으로 휘감았다.

등나무는 메마른 줄기보다 화려한 자태로 유혹하는 꽃이 더 매력적이다. 한여름 더위에 지쳐 헉헉대며 길을 가다가 담장 밖으로 흐드러진 등꽃을 보면 시원한 물 한잔을 마신 듯 마음이 상쾌해진다. 사랑에 취한 것 같은 황홀한 모습에서 꽃말 또한 그렇게 지었으리라.

사람들은 하는 일이 잘 안될 때 ‘꼬인다’는 말을 쓴다. 칡과 등나무 줄기의 성질을 말하는 게 아니라 칡과 등나무 줄기에 감겨 잘 자라지 못하고 심지어 생명을 잃기도 하는 다른 식물들의 운명을 뜻하는 말일 것이다.

등꽃의 꽃말이 ‘환영’과 ‘사랑에 취함’이라면 같은 성질인 칡꽃도 자기도취적인 뜻으로 지어져야 될 것인데 ‘사랑의 한숨’이라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서로 감기는 것은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도 생긴다. 그것이 갈등이다. 서로의 뜻이 달라서 파생되는 정신적인 고통이다. 지팡이의 재료로 등나무가 좋다는 것은 갈등으로 인해 쓰러지지 말고 지탱하라는 위안이 아닐까. 때로는 욕심의 싹을 잘라내지 못하고 근심 속에서 허덕이며 마음의 상처가 생기고 아픔을 겪는다. 그런 후면 마음이 정화되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리 사랑하는 나무라도 그 아래에서는 나무 전체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저만치 키 큰 나무를 본다. 햇빛에 몸을 맡긴 나뭇잎들이 춤추듯 자유롭다.

신서영(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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