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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촉(觸)- 석영철(경남민생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 2020-10-21 20:12:14

언제부터인가 ‘촉(觸)’이라는 말을 자주 쓰고 있다. 촉은 ‘어떤 사실이나 현상을 보고, 보이지 않는 다른 내용까지도 잘 알아차리는 능력’ 이런 의미다.

그런데 이 촉이 사람과 조직을 여럿 잡는다. 이 촉에 기대어 살면, 때론 쪽박도 차고, 때론 중대한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조직을, 기업을 수렁으로 내몰기도 한다. 왜냐하면, 이 촉이란 것이 대체로 ‘가진 자들의 경험’과 ‘설익은 경험’을 일반화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촉을 경계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대표님은 촉이 좋은 사람이에요’ 또는 ‘촉이 좋으니 뭘 잘하겠네요’ 이런 칭찬 아닌 칭찬의 말을 요즘은 그냥 ‘인사치레’의 말로 듣는다. 왜냐하면 이 촉으로 뭐 하나 제대로 이뤄놓은 것이 없기 때문이고, 또 지금도 이 촉의 굴레를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촉이란 말이 담고 있는 긍정적인 의미를, 결단력을 갖춘 개척정신과 도전자의 정신으로 높여나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는 생각은 든다. 꼰대들의 자기 자랑이나 가진 자들의 돈벌이 감각을 이 촉이라는 단어로 포장하는 데는 왠지 거부감이 든다. 정치인들의 촉에 국민의 미래를 맡기는 것도 이젠 신물이 난다.

코로나 시대다. 이 촉들이 비대면으로 우리를 강타하고 있다. 2021년일까? 2022년일까? 코로나가 그 운명을 다한 시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해 수많은 사람이 이야기한다. 그런데, 불안한 것은 이들이 예측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도 역시, 지금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여전히 ‘더 많은 돈벌이 방법’, ‘더 간편한 조직관리’, ‘더 관리하기 쉬운 유권자의 심리’ 이런 것에 촉을 더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나의 촉은 운명이 다해가는 걸 느낀다. 청년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갈고닦아 훌륭한 촉을 세워달라고 말이다.

좀 더 평등한 세계를, 남북통일로 대륙으로 나아가는 세계를, 진보 정치가 장식품이 아닌 세계를, 아이들에 대한 학대와 인종 차별이 없는 세계를, 기후변화로 온 세계가 냉탕과 열탕을 반복하지 않는 그런 세계를 그려야 한다. 그런 ‘촉’을 세워보자.

석영철(경남민생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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