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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가을단상- 송신근(수필가)

기사입력 : 2020-10-22 20:01:04

낙엽이 곱게 물들고 있다. 움이 트고 잎이 피어나고 삼홍빛 가을향기 흘러나오다 한 잎 두 잎 바람에 실려 쓸쓸히 가라앉을 것이다. 가지들은 허허로운 하늘 아래서 긴 겨울의 침묵을 맞으리라. 가을은 누구나 자기 그림자를 내려다보며 자신의 무게를 헤아리는 계절, 낙엽이 지는 귀로에서 한 번쯤은 오던 길을 되돌아보며 순수해지고 싶은 계절이다.

이 가을의 절정에서 잠시, 혹독했던 지난여름을 되돌아본다. 수그러들 것 같았던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정체불명의 질병이 여름에도 온 나라에 무섭게 퍼졌다. 이 질병의 재앙에 사람들의 일상이 파괴된 것은 물론 수많은 고귀한 생명이 죽어 나갔다. 사람과의 자유로운 왕래가 금지되고 정적과 어둠에 잠긴 도시의 상황에 두려움이 일기도 했다. 모든 것을 해결해 줄 듯한 과학기술도 속수무책으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거리두기를 연장하며 코로나19 퇴치에 온 힘을 쏟으며 여름을 보냈다.

올 장마는 유난히 길고 습했다. 그칠 줄 모르고 밤낮으로 내리는 비는 나에게도 약간의 우울감을 주기도 했고, 비를 좋아하는 내 감성조차 무서운 두 얼굴을 보여준 폭우에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했다. 산사태로 집과 축사가 매몰되고, 저수지의 붕괴로 한 마을이 물에 잠기는 참혹한 수해 현장을 매체를 통해 보고 들으며 불안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강력한 태풍 마이삭의 영향으로 길목에 있던 서남해와 동해지역은 피해가 가중됐고 높은 파도와 강한 비바람으로 인해 해안가 저지대 침수 및 방파제, 어항시설 등의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하루빨리 복구되어 수재민들의 젖은 마음이 설렁설렁한 가을바람에 잘 말려졌으면 좋겠다.

변화된 환경은 모두에게 생각의 힘을 요구한다. 수동적으로 끌려다니지 말고 새로운 기회로 삼으라는 발상의 전환을 강조하기도 한다. 재앙이란 모두가 함께 겪는 것이다. 이 낯설고 암울한 상황을 위기라고 단정 짓거나 굴복하지 않고 우리 모두는 땀 흘리며 격렬히 저항해왔다. 이제는 현실이 아무리 잔혹하고 어둡다 할지라도 희망에 대한 의지의 끈을 놓지 말고, 우리가 추구하는 꿈을 향해 나가면서 현실을 받아들이고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강력하고 유일한 생존 방법이기 때문이다.

답답하고 혼란스러웠던 이 여름을 어떻게 넘기나 했는데 계절의 질서는 어김없어 이제는 선들선들 가을바람이 불고 있다. 계절도 바뀌고 세월도 흐른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 어디 있는가. 변하거나 죽지 않고 한결같이 존재하는 것이 무엇인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은 한때일 뿐이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다. 산과 들에는 누렇게 잘 익은 알찬 벼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고 향기로운 과일들이 탐스럽게 익어 있다. 결실 속에 내재되어 있는 것은 고통이다. 가을이 주는 수확물들도 지난여름 태풍의 모진 비바람을 맞으며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고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썼을 것이다. 저 들판의 벼도 그런 고통을 견디지 못했다면 잘 여문 이삭을 매달고 겸허하게 고개 숙일 수 없을 것이다. 지치고 상처 난 우리의 마음도 청명한 이 가을에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 그래서 고개 숙인 이삭처럼 알찬 열매를 맺어야 하지 않겠는가.

송신근(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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