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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왜 정치가 공항을 짓나- 이상권(정치부 서울본부장)

기사입력 : 2020-10-27 20:37:00
이상권 정치부 서울본부장

구윤철 국무조정실장은 지난 22일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국무총리실 산하 김해신공항검증위원회의 김해신공항 건설(김해공항 확장안) 재검증 결론이 늦어질 것을 예고했다. 검증위는 지난달 24일 국무조정실을 통해 법제처에 법령 유권해석을 요청했다.

구 실장은 “법제처가 빨라도 11월 초가 돼야 답변을 줄 수 있다”고 했다. 9월에서 10월로 늦춰진 검증위 최종 결과는 12월에나 나올 것으로 보인다.

마무리된 듯했던 ‘신공항 우려먹기’ 망령이 되살아났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신공항 입지별 사전타당성 평가 결과는 1000점 만점 기준으로 최저 817점에서 최대 832점을 받은 김해공항 확장이 1위였다. 밀양 640~722점, 가덕도 495~678점에 그쳤다.

당시 강호인 국토부 장관은 대국민 담화에서 “공항 건설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와 명성을 가진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이 5개 지자체(경남·부산·울산·대구·경북)가 합의한 방식에 따라 오직 전문성에 기초해 공정하고 객관적인 분석을 통해 내린 최적의 결론”이라고 했다.

‘최적의 결론’은 정권이 바뀌면서 하루아침에 뒤집혔다. 급기야 지난 6월 20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김해공항 확장에 반대하는 민주당 소속 부산·울산·경남 3개 지자체장과 총리실에 재검증을 맡기기로 합의했다.

합의문은 “동남권 관문 공항으로서 김해신공항의 적정성을 총리실에서 논의하기로 하고, 그 검토 결과에 따르기로 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검토 결과에 따른다’는 부분도 상투적 문구에 지나지 않는다. 최종 결정은 정부 몫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밝혔다. 검증위는 그야말로 유명무실한 기구이며 ‘입맛’에 맞지 않는 결과는 휴짓조각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부산 정치권은 김해신공항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부각해 가덕도 신공항 추진의 방편으로 삼으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국토부 장관은 대통령이 임명한 인사다. 검증위는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총리 시절 만들었다. 김해신공항 반대는 민주당 부울경 지자체장이 주도하고 같은 당 지역 국회의원이 밀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모든 주도권을 쥐고 있으면서 엄청난 논란이 있는 것처럼 계속 된소리를 내는 속내가 궁금하다.

그사이 지역민은 이리저리 갈리고 아귀다툼의 최일선으로 내몰렸다. 경남도민은 지난 10여 년간 밀양신공항 유치를 주장하며 부산과 악다구니를 했다. 이제는 부산 가덕도를 찬성하는 쪽으로 분류됐다.

부산 접근성이 좋은 김해시와 거제시 정도가 찬성 입장을 밝혔을 뿐인데도 경남도민 전체의 뜻인 양 프레임을 짰다. 물론 여권이 주도한다. 경남도민은 졸지에 이쪽저쪽을 오가는 지조 없는 부류가 됐다.

이낙연·정세균 전·현직 총리에다 이재명 경기지사 등 여권 차기 잠룡이 앞다퉈 가덕도 신공항 지지를 표명하고 있다. 여기에 동조하지 않고는 부산 민심을 잡을 수 없다는 정치적 계산이란 게 뻔히 읽힌다. 때마침 내년 4월 부산시장 보궐선거에다 이후 대선까지 기다리고 있다. 애초 가능성이 희박했던 ‘가덕도 신공항’을 민주당이 각고의 노력으로 유치했다는 성과물을 내놓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지역 민심이 단박에 쏠릴 모티브임은 분명하다.

김해, 가덕도가 중요한 게 아니다. 최저 평가를 받은 입지가 최상의 선택지가 되려면 신뢰할 만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전문가 판단을 짓뭉개고 ‘정치 공학’으로 지은 공항에 목숨을 맡기는 상황이 올까 우려해서 하는 말이다.

이상권(정치부 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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