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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창원의 역사는 어디에 있나?- 석영철(경남민생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 2020-10-28 20:25:09

얼마 전 변방에서 향토사를 꿰뚫고 있는 한 분을 만났다. 늦은 밤,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들었다. 한 번씩 불러 막걸리를 사주시며 향토사를 들려주시는 분이다. 몇 날 며칠을 들어도 새로운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이분을 만날 때마다 왠지 창원이라는 도시가 뿌리가 없는 도시인 것처럼 느껴졌다. ‘왜’일까?

신생 공업도시만 남은 창원은 그 뿌리를 상실한 지가 오래다. 또 그 뿌리마저 한 맺힌 원주민의 역사로만 치환돼왔다. 마산 하면 전국 7대 도시였고, 부마민중항쟁의 도시였고, 또 한때 최대 호황이었던 마산자유무역지역 그것 외에 무엇이 기억에 남을까? 진해 하면 진해군항제, 벚꽃, 군사도시를 제외하고 그 무엇이 떠오를까?

창원에 온 지 34년이 되었다. 대부분을 이곳에서 보냈지만, 창원의 역사에 대해 집요하게 연구하는 사람들을 보기 어려웠다. 단순히 토박이 정신으로 역사를 집대성할 수는 없다. 성산패총, 현동 유적지, 공업도시, 최윤덕 장군, 창원향교, 곰절, 웅천읍성, 다 단편일 뿐이다. 창원광장에 동상을 세운다고 상징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가야 고분과 멋진 토기를 발굴해서 한때 대서특필한다고 해도 단편에 그치고 말았던 것이 현실이었다.

창원의 향토문화를 연구하시는 분들이 계신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반갑게도 지난 7월에 창원시정연구원 안에 ‘창원학연구센터’를 개설했다고 한다.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이젠 한 걸음 더 나아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창원대나 경남대나 그 어디라도 좋으니, 창원의 역사를 연구해줬으면 한다. 향토사 연구자들, 학교, 시정연구원 또 언론기관도 힘을 모을 때이다. 폭넓게 ‘창원사연구포럼’이라도 시작했으면 한다. 물론 그 가교의 역할은 지방정부의 몫이다.

고대로부터 지금까지의 수많은 사람과 집단과 또 문화들이 누적된 것이 바로 지역의 역사이다. 창원도 그럴 것이다. 정치인들이 좋아하는 ‘K-POP’도 중요하지만, 창원의 역사를 뮤지컬로, 그림으로 승화시켜, 성산아트홀에서, 3·15아트센터에서 그것을 보고 싶다. 멋진 창원시 박물관을 보고 싶다. 뿌리를 찾고 정비하는 것은 도시의 힘을 세우는 일이다. 창원시는 인구 110만 도시다.

석영철(경남민생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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