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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정치권의 미싱- 김희진(정치부 기자)

기사입력 : 2021-01-25 20:22:43

정치권에서 미싱이 되살아났다. 재봉틀을 일컫는 일본말, 그 미싱 말이다. 23년 전 묻혔던 ‘공업용 미싱’을 2021년으로 소환한 사람은 민주당 김경협 의원과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다. 주 원내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현직 대통령은 시간이 지나면 전직 대통령이 된다. 전직이 되면 본인들이 사면대상이 될지 모른다”고 하자, 김 의원은 “주 원내대표의 막말이 국민의 귀를 오염시키지 못하도록 공업용 미싱을 선물한다”고 맞받아쳤다.

▼공업용 미싱 탄생비화는 1998년 5월에 만들어졌다. 김홍신 전 한나라당 의원이 경기 시흥 정당연설회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한다. 사람을 너무 많이 속여 공업용 미싱으로 (입을)박아야 할 것 같다”고 했다. 현직 대통령을 겨냥한 이 발언은 큰 파장을 불렀다. 여야가 뜨거운 공방을 벌였고, 전국 각지에서 국민들의 항의전화도 빗발쳤다. 모욕죄로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은 김 전 의원은 국민들로부터 진짜 재봉틀도 받았다.

▼이후 20여년간 여의도에는 미싱을 대체한 막말이 넘쳤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전 원내대표는 문 대통령을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고 했고, 민주당 홍익표 전 원내대변인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두고 ‘귀태’라 표현했다. 민주평화당 천정배 전 의원은 이명박 전 대통령을 ‘쥐박이’라 했고 한나라당 이상배 전 정책위의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일본순방을 ‘등신외교’라 했다. 김무성 전 의원은 직함 없이 ‘노무현이’라고 반말했고 통합진보당 이정희 전 대표는 ‘박근혜씨’라고 불렀다. 막말에는 여야도 당세도 없었다.

▼국회의원들의 막말에 국민들은 더이상 놀라지도 않는다. 국회의 성장 시계는 멈췄지만 국민의식은 성장했기에 공업용 미싱이 그려진 마스크가 국회로 배송됐다는 뉴스는 아직 나오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길 바란다. 미씽(missing)된 정치권의 품격 대신 애꿎은 미싱(ミシン)만 되살아난 현실이 안타깝다.

김희진(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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