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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취해 액셀 밟았지만 차 고장나 주행 못했다면 “음주운전 아냐”

대법원 “차 안움직이면 운전으로 볼 수 없어”

기사입력 : 2021-01-31 20:46:51

음주상태에서 차에 시동을 걸고 주행하려 가속페달을 밟았으나 차량 고장으로 움직이지 않았다면 음주운전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검사의 상고를 기각하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한다고 31일 밝혔다.

A씨는 지난 2016년 1월 29일 새벽 3시 50분께 김해시 관동동의 한 도로에서 혈중 알코올농도 0.122%의 만취 상태에서 사고로 멈춘 차량에 시동을 걸고 변속기와 가속페달을 조작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A씨는 회식 후 대리운전을 이용해 직장 동료를 내려준 뒤 자신의 집으로 가기 위해 또 다른 대리기사를 불렀다. 그때 길을 지나던 대리기사인 B씨가 대리운전을 제안해 받아들였고, A씨는 B씨가 운전하는 동안 잠들었다. 깨어나 보니 B씨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A씨의 차량도 사고가 난 상태로 편도 3차선 도로의 2차선과 3차선 사이에 정차돼 있었다. A씨는 차량을 이동하기 위해 차에 시동을 건 뒤 기어를 조작하고 페달을 밟았지만 차량은 움직이지 않았다. 목격자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A씨를 조사한 뒤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고, 검찰은 A씨를 재판에 넘겼다.

음주운전 단속
음주운전 단속. /경남신문 자료사진/

1·2심 법원은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변속기를 조작하고 가속 페달을 밟은 것만으로 범죄 구성요건이 실현되지 않았고, 도로교통법에서 미수범을 처벌하는 규정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음주상태에서 차를 운전해 실제 차가 움직였을 때 음주운전의 위험성이 현실화하는 점 등에 비춰 가속페달을 밟은 것만으로 범죄행위가 행해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검찰은 “도로교통법상 운전이란 엔진 시동 후 이동을 위한 제반 장치의 조작만으로 충분하고 실제로 차량이 이동할 것까지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며 ‘법리 오해’를 이유로 항소·상고했지만 2심 법원에 이어 대법원도 기각했다.

대법원은 “‘운전’이란 자동차를 ‘본래의 사용방법’에 따라 사용하는 것을 말하는데, 애초부터 차가 고장 등으로 발진할 수 없는 상태였다면, 운전이라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도영진 기자 doror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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