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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이에 건네는 ‘따뜻한 위로’

창원 꿈꾸는 산호 작은도서관 윤은주 관장

에세이집 ‘바다는 철문을 넘지 못한다’ 펴내

기사입력 : 2021-02-24 15:28:10

세상으로 나가는 길을 잃은 이들에게 위로가 될 책이 나왔다.

창원시 꿈꾸는 산호 작은도서관 윤은주(54) 관장이 첫 번째 에세이집 ‘바다는 철문을 넘지 못한다(학이사)’를 펴냈다. 학이사 산문 시리즈 ‘산문의 거울’ 다섯 번째 작품집이다. 책은 5부(모습·문득·흔적·모든·기억)로 구성된 41편의 글을 실었다. 대학교와 도서관, 장애인기관에서 문화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책 읽기와 글 쓰기를 가르치는 일을 하며 겪은 기억을 담았다.


윤은주 관장의 첫 번째 에세이집 ‘바다는 철문을 넘지 못한다’

윤 관장은 “10여 년간 해온 시각장애인 글쓰기 수업은 행복에 대한 생각을 바꾼 계기가 됐다. 가르치는 입장에 있지만 배움은 서로 주고받는 것이라는 사실을 체감하게 된다”고 전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시각장애인 대상의 수업, 보지 못한다는 것은 어떤 장애일지, 혹시라도 내가 편견으로 이분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까 걱정스러운 마음, 이런 것들이 온통 뒤섞여 혼란스럽기도 했다. 활자로 된 책을 소리 내어 읽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그분들은 밝고 활기찼다. 누구나 밖에서 피상적으로 보는 것으로 타인을 평가할 수 없다는 것, 누구든 자신만의 방식으로 아프고 힘든 삶에 당당히 맞서 행복을 찾고 있다는 것, 그리고 때로는 하나의 결핍을 가진 이들이 감수성과 마음의 깊이는 훨씬 풍요할 수 있다는 것까지 강의하면서 오히려 내가 많이 배우고 느꼈다. (중략) 종강식이 끝날 무렵 수강했던 박정녀씨가 포장지에 싸인 뭔가를 건네주셨다. 그분이 주신 것은 스카프였다. 한달 뒤 다시 만나 함께 경주로 문학기행을 하기로 약속했던 그분은 그러나 한 달을 기다리지 못하고 그만 지병이 갑작스럽게 악화되어 서둘러 떠나고 말았다. 장례마저 끝난 뒤 소식을 듣고 망연했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영원히 기억하겠노라 다짐뿐이었다. 이토록 하찮은 존재감을 붙들고 왜 그렇게 헛된 것들에 집착해 왔던 것일까. -흔적 ‘메멘토 모리’

윤은주 꿈꾸는 산호 작은도서관장이 도서관에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성승건 기자/
윤은주 꿈꾸는 산호 작은도서관장. /경남신문 자료사진/

흔적 ‘메멘토 모리’ 편은 잃고 나서야 느낄 수 있는 역설적인 행복을 그렸다. ‘누군가의 파도가 되고, 누군가 파도가 되어 오는 삶’의 여운이 짙게 묻어난다. 저자는 이 책의 인세를 중도 입국한 청소년들의 장학금으로 쓸 예정이다.

“오래 전부터 이주민 인권, 교육 운동을 이어오고 있어요. 낯선 나라에 던져진 청소년들이 얼마나 어려움을 겪는지 잘 알기에,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습니다.”

주재옥 기자 jjo5480@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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