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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함께 보는 경남의 명소 (14) 창녕 우포늪

살아있는 모든 것이 호들갑 떠는 곳

기사입력 : 2021-04-01 20:54:07

낮게 엎드린 마을 들머리

중늙은이 하나 소를 몰고 지나간다

물방개와 가시연꽃 그림자를 밟으며

비닐 돗자리를 든 아이들이 통통거리는 오후다

발길마다 폴폴 이는 흙먼지에 아지랑이가 어리고

길섶 풀더미엔 이름 모를 꽃들이 얼굴을 열었다

몇 굽이 들길을 돌아 흐르는 봄기운에

만 년 뻘의 깊이를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듯

부산을 떠는 벌과 나비가 시간을 섬기고 있다.

흙 좋고 넓은 들은 거들떠보지 않고

철석같은 저 원시의 등짝은

아직도 진화를 멈추지 않았는데

물 좋고 산 좋으니 마음 급할 게 없다

먹이를 입에 문 새 한 마리

바람을 가르며 하늘로 솟구친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호들갑을 떠는 곳

신(神)들은 모두 소풍을 가버렸는지

불과 얼음을 꿈꾸고 있는 소벌*에서

지은 죄보다 덮어쓴 게 더 많은 나이

괜히 내 마음이 촌스럽다

☞ 우포늪은 창녕군 유어면, 이방면, 대합면, 대지면 등 4개면에 걸쳐있는 총면적 2505㎢로 광활한 늪지이다. 우포늪에는 800여종의 식물류, 209종의 조류, 28종의 어류, 180종의 저서성대형무척추동물, 17종의 포유류 등 수많은 생물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寶庫)이다. 우포늪은 1997년 7월 26일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됐으며 국제적으로도 1998년 3월 2일 람사르 협약 습지로 등록됐다. 1999년 8월 9일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돼 관리되고 있다. 2011년 1월 13일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천연기념물 524호)됐고, 2012년 2월 8일 습지개선지역 지정 및 습지보호지역으로 변경됐다. 2018년 10월 25일 제13차 람사르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세계 최초 람사르습지도시로 인증받았다.

오래 전 우포늪에서 본 가시연꽃의 자태에 매료되었던 감흥이 다시 떠올랐다. 사람살이와 함께 하는 자연의 숨결이라니.

시·글= 이월춘 시인, 사진= 김관수 사진작가

* 소벌 : 우포의 우리말. 지금도 나이 든 창녕 사람들은 우포를 소벌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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