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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트로트 만세- 이월춘(시인·경남문인협회 부회장)

기사입력 : 2021-04-07 23:03:55

운전경력 30년이 넘었다. 그럼에도 작년까지 내 차엔 트로트 관련 테이프, 시디, 유에스비가 하나도 없었다. 왜냐하면 아내가 트로트라면 기겁을 하였기 때문이다. ‘뽕짝’을 들으면 머리가 아프다며 한사코 싫어했다.

그런데 작년에 인기가 많았던 ‘미스터트롯’을 보더니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는 텔레비전 프로도 트로트 관련만 본다. 아마 코로나 사태 때문이리라. 나 역시 이렇게 트로트를 좋아하게 될 줄 몰랐다. 트로트가 가진 묘한 중독성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 서민들이 쓰는 생생한 언어로 이루어진 가사는 인간의 오욕칠정을 그대로 담아낸다.

또한 참가자들의 인생 험로가 공감을 얻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같이 무명 가수의 어려운 과정을 겪었고, 화려한 연예인의 모습은커녕 굴곡진 인생의 뒷모습을 가졌으니 그 흔한 안티팬조차 있을 리 없다. 그들의 삶에 우리의 삶을 투영하기 때문에 열광하는 것이다.

트로트는 대개 매우 애절한 슬픔의 노래이며,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행복해질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관, 고향을 떠나 정착하지 못하는 나그네의 슬픔 등을 내용으로 삼아 일견 비판적이기도 하다. 거기다 일본 대중가요의 강력한 영향 아래에서 형성된 양식이라는 점에서 ‘왜색’, ‘일제 잔재’로 청산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 신파적 질감이 낡고 세련되지 못한 부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져, 비판의 초점이 된 측면도 있었다. 지난날 많은 금지곡이 이를 증명한다.

생활고에 치여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오로지 노래의 길을 걸어온 그들의 삶에 공감하기 때문에 아내도 나도 이렇게 열광하는 것이다. 물론 가사에 신파조가 더러 있어 유치(?)하다고 핀잔을 들을 수도 있지만 ‘그대 슬퍼 마라. 사는 게 뭐 별거 있더냐’며 위로하는 트로트, ‘고마워요. 사랑해요. 감사합니다’로 우리와 너무 가까이 있는 트로트. 고통과 아픔 속에서도 꿈을 품을 수 있게 격려하는 트로트가 있어 행복하다.

며칠 전 나들이 갔다가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 아메리카노 한잔하면서 지나치지 못하고 또 하나 구입했다. 지금 내 차에는 트로트 관련 유에스비가 다섯 개나 있다.

이월춘(시인·경남문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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