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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 고유풍습 ‘연도 여자상여소리’ 계승 나선다

진해문화원 ‘전통상례 보존회’ 발족

선소리부터 상여꾼까지 여자들만 참여

기사입력 : 2021-04-11 20:52:10

이것도 개울인데 노잣돈 없이 어찌 건너나

에호, 에호, 에가리 넘자, 에호

찬아(아명) 찬아 우리 찬아 내 장남 불쌍하네

에호, 에호, 에가리 넘자, 에호

9살 때 엄마 잃고 고생고생 다하다가

에호, 에호, 에가리 넘자, 에호

당산할매 덕분으로 자식 낳고 잘 살구나

에호, 에호, 에가리 넘자, 에호

이 소리는 1981년 12월 마지막 상여가 나간 후 맥이 끊긴 진해 연도여자상여 소리다.

창원시 진해구에는 예로부터 ‘연도여자상여’라는 매우 특이한 장례 풍습이 있었다. 우리나라에는 도서 지역이 무수히 많고 시대적 배경 또한 비슷하지만 유독 연도라는 섬에서 여성들이 주축이 돼 장례 문화가 형성된 것은 매우 드문 경우에 속한다. 이런 진해 고유의 문화를 계승하기 위한 의미있는 행사가 열렸다. 지난 9일 진해문화원(원장 우순기) 부설 연도여자상여소리 전통상례보존회가 현판식을 갖고 본격 문화 계승에 나선 것이다.

지난 2013년 하동에서 열린 제37회 경남민속예술축제에 참가해 ‘연도여자상여소리’ 장례 절차를 재현하는 모습./진해문화원/
지난 2013년 하동에서 열린 제37회 경남민속예술축제에 참가해 ‘연도여자상여소리’ 장례 절차를 재현하는 모습./진해문화원/

◇연도여자상여의 유래= 진해구 연도에서는 연도여자상여의 유래로, 남자들이 고기잡이를 나가면 여자만 섬에 남아 있기 때문에 여자들 주축으로 상여를 멨다는 실생활에 근거를 둔 설이 있다. 또 다른 설로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옛날 동편에 장사샘이 있었는데 이 샘물을 마시면 장사가 되거나 불구자가 되었다. 예전에는 이 연도에 힘센 사람과 불구자가 많았는데 장사가 되면 반드시 뱃길을 괴롭히는 악인이 되어야 하는 운명을 지녀야 했으므로 이런 화를 면하기 위하여 섬사람들은 아예 장사샘을 메워 버렸다고 한다. 그 뒤로 연도에는 힘센 남자를 기피하는 의식이 생겼고 여자들이 생활을 주도하게 되었다. 그래서 여자들이 상여를 메고 장례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연도여자상여소리 특징= 연도여자상여소리의 특징은 선소리꾼부터 상여꾼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여자 중심의 장례 풍습이라는 점이다. 또 상여소리는 망자를 애도하는 의식요(儀式謠)의 성격과 운구와 봉분 등 힘든 일을 견디는 노동요의 성격을 함께 지니고 있다.

그리고 장례 절차를 마친 뒤 흥겨운 뒤풀이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이어주다가 단절시켜 살아남은 자들의 삶에 대한 다짐을 되새기게 한다. 마지막으로 장지를 이웃 섬인 솔섬에 둠으로써 주민들의 유일한 보금자리인 섬을 지키고 망자의 마지막 길인 뱃길이 주민들의 삶이 건너야 할 숙명적인 통과의례라는 것을 알게 한다. 더욱이 망자의 마지막 가는 길이 뱃길이라는 점에서 섬에서 태어나 평생을 바다와 함께 살아온 섬주민들의 숙명적인 모습으로도 볼 수 있다.

연도 주민들의 장지로 쓰인 솔섬은 훈차 표기인 송도(松島)로 더 많이 쓰이고 있다. 소나무가 무성하고 높이는 해발 89m로 남북으로 길게 뻗은 섬이다. 연도에는 무덤으로 쓸 땅이 없어 섬주민들은 대부분 이웃 섬인 솔섬에 장지를 썼다. 상여를 메고 오르는 길이 무척 가파르다.

지난 1981년 12월 연도에서 마지막으로 연도여자상여 풍습에 따라 박용출(81)씨 부친의 장례를 치르고 있는 모습.(이때에는 남자들이 상여를 멨다.)/박용출씨 제공/
지난 1981년 12월 연도에서 마지막으로 연도여자상여 풍습에 따라 박용출(81)씨 부친의 장례를 치르고 있는 모습.(이때에는 남자들이 상여를 멨다.)/박용출씨 제공/

◇진해문화원의 보존 노력= 진해문화원에서는 연도여자상여소리 보존을 위한 사업을 매년 실시하고 있다. 주로 진해문화원 공연팀 회원으로 구성된 이 보존회는 바쁜 일과 속에서도 빠짐없이 연습을 해오고 있다. 2008년 첫해에는 진해야외공연장 연습실, 2010년 진해민속예술전수관, 2011년 태평동노인복지회관, 그 이후 현재까지 진해문화원 진해민속예술전수관에서 연도여자상여소리 보존을 위한 연습을 하고 있다.

우순기 진해문화원장은 “이 보존 사업이 보다 활성화되려면 연습만이 아니라 실생활 속에서도 시민들에게 공유되는 문화 사업이 돼야 하는데, 군항제 축제 기간에는 상여 나가는 소리가 듣기에 거북할 수밖에 없어 연습실 내에서만 연습하고는 민속축제에만 제한적으로 참여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 외에도 2019년 9월에 예술in공간 주최로 창작마당극 ‘연도댁이야기’가 ‘섬 여인의 일생을 담은 이야기’로 연출돼 진해야외공연장에서 처음 선을 보였다. 박상아 총괄기획단장의 2019년 공연장 상주단체 육성 지원 사업으로, 지난해에도 공연을 계획했으나 코로나19로 연기, 올해 다시 준비 중에 있다. 한편 극단 고도에서도 시 제안으로 진행했지만 중단된 바 있다.

지난 9일 창원시 진해구 진해민속예술전수관에서 진해문화원 부설 연도여자상여소리전통상례보존회가 현판식을 가졌다. 사진 왼쪽부터 전정희 운영위원(문화원 이사), 송호철 운영위원(문화원 이사), 정동찬 보존회장(문화원 이사), 우순기 진해문화원장, 최인주 진해구청장, 이영대 부원장, 최치광 부원장, 박상아 예술in단장./진해문화원/
지난 9일 창원시 진해구 진해민속예술전수관에서 진해문화원 부설 연도여자상여소리전통상례보존회가 현판식을 가졌다. 사진 왼쪽부터 전정희 운영위원(문화원 이사), 송호철 운영위원(문화원 이사), 정동찬 보존회장(문화원 이사), 우순기 진해문화원장, 최인주 진해구청장, 이영대 부원장, 최치광 부원장, 박상아 예술in단장./진해문화원/

◇지금은 사라진 연도= 연도는 지금 사실상 소멸됐다. 부산 신항만 공사로 인해 섬이 육지화 됐기 때문이다.

강경용 연도 이장에 따르면 1995년부터 시작된 신항만 공사의 국제 전용부두 축조로 인해 2010년 조류의 흐름이 변한 앞바다는 뻘이 시꺼멓게 썩어들어가면서 피조개는 물론 다양한 종류의 수산물들이 사라졌다. 이후 마을 사람들도 빠져나가면서 연도라는 명칭마저 없어질 위기에 놓여 있다고 전했다. 그는 1981년 12월에 마지막 상여가 나간 후 맥이 끊긴 연도여자상여소리가 보존되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연도는 1973년 웅천면의 진해시 편입으로 연도동으로, 그리고 2010년부터는 창원시 진해구 연도동으로 행정구역이 개편됐다. 제덕동(괴정)으로부터 4㎞ 동남 지점에 있는 낙도로서, 그동안 주민들은 4~5대에 걸쳐 연도에서 살아왔다. 지척에 있는 솔섬(송도)과 함께 숲이 울창해 서까래(椽) 재목을 찍어내던 곳이라 해서 연도(椽島)라 불렸다는 설도 있다. 연도는 산이 가파르기 때문에 채소, 밀, 콩 등 농작물과 미역, 파래, 물고기 등을 웅천 5일장에 내다 파는 것이 주민들의 일상이었다. 남자들은 해마다 4월이 되면 조기잡이를 하러 연평도나 전라도 위도까지 가서 어로 작업을 하고는 8월이 돼서야 돌아왔다. 만선을 하고 돌아온 배는 용왕기나 태극기를 달고 꽹과리와 징을 울리면서 앞바다를 한 바퀴 돌고는 해변에 세우고 돈 가마니를 선주 집으로 이동하기도 했다.

◇반드시 이어져야 할 전통문화= 이날 현판식을 계기로 진해문화원에서는 경남도 무형 문화재로의 지정 노력에 보다 힘써 그 결실이 이루어지길 희망하고 있다.

우순기 원장은 “지금은 사라진 연도의 넋을 위해, 또한 연도여자상여소리의 제소리를 찾기 위해서 노력을 지속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아무리 파도가 치고 비바람이 불어도 상여를 실은 배는 사고가 없다는 속설처럼 전통문화가 면면히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 연도여자상여소리 보존회의 소망이다.

이민영 기자 mylee77@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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