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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다시 미화사에 갔네- 손음(시인)

기사입력 : 2021-09-09 20:18:52

한여름의 아스팔트는 복사열의 광기로 무력감이 어른거린다.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내린다. 들판을 돌아 나오는 바람에게서 비린 풀냄새가 난다. 생명체는 수시로 비린내를 날린다. 아마도 자신이 살아 있다는 저항을 냄새로 보내오는 것이리라.

오래된 숲을 찾아가는 길이다. 바다가 있는 도시에 살다 보니 숲이 주는 안정감과 다정함이 그리울 때가 있다. 이번 여름 괴로운 일 중 하나는 체질에 맞지 않는 글을 써야만 하는 지루한 기록자로서의 생활이 그것이다. 그것은 선택의 조건이어서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마치 물속에서 숨을 참고 있던 때의 기억처럼 그때 나는 막 괴로워하면서 ‘쉼’이라는 글자를 부려둘 곳이 어디일까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보니 나는 검은 원피스를 입고 자동차를 끌어 달리고 달리는 중이었다. 두 달여 동안 나를 붙들어 준 컴퓨터와 더위와 의자와 안경에게 경의를!

자동차로 한 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숲에는 오후의 햇볕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고 사람들은 일제히 초록 옷을 입은 듯 하나의 색깔로 어우러져서 한가롭게 허공을 걷고 있다. 소나무들은 기린처럼 묵묵히 걷는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동안 햇볕이 바람에 마음껏 부풀려지고 있다. 나는 어린 나뭇잎의 바이브레이션처럼 떨고 있다. 순간 내가 좋아하는 것 모두 저런 푸른 냄새 속에 있다는 생각이 명확해진다. 꽃과 나뭇잎과 숲의 공기에 잠긴 새, 그리고 빈집의 윤곽들, 또한 홀로 갖는 필연적 비밀들이 그러할 것이다.

물줄기는 고랑과 고랑을 이야기처럼 흘러가고 있다. 도래솔을 따라 핀 맥문동이 투명한 보랏빛을 풀어놓는 순간 한여름의 칸타타는 물방울을 친다. 그 곁 외따로 서서 머리에 붉은 꽃을 이고 있는 배롱나무는 내가 한 번도 안아주지 못해 미안한 언니처럼 처연하다.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를 찰랑거리던 언니는 동네에서 제일 예뻤지만 시집을 가서는 시름시름 앓기만 했고 한번도 행복한 삶을 살지 못했다. 나이 차가 많은 언니여서 부모 같았던 언니의 삶이 위태롭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내가 두 아이를 낳고 겨우 알 수 있었지만 나는 아무 도움도 되지 못했다. 생각하면 아름다웠던 처녀의 한시절이 믿을 수 없도록 빠르게 흘러가버려 세월이 무심하기만 하다.

숲은 잠시 고적해졌다. 맨발로 숲을 걸어본다. 발에게도 ‘쉼’이 필요할 것이다. 구두와 양말을 벗어던진 발은 날개를 가진 듯 가볍다. 샘물처럼 맑은 바람이 내 곁에서 논다. 나무들이 일순 작은 소란을 일으키며 흔들린다. 한 개의 나뭇잎이 모여 천 개 만 개로 번져 소용돌이친다. 저 가냘프고 작은 것들이 이루고 있는 세계를 우리는 아직 알 수 없다. 숲의 한가운데로 들어선다. 발을 씻을 수돗가가 따로 보이지 않지만 이대로 장소를 옮겨간다 해도 그리 문제 될 것이 없다.

이 숲에서는 무엇이든 괜찮다. 맨발에 닿는 돌부리의 감촉이 딱딱하다. 맨발에는 예민한 귀가 있다. 잠시 걸음을 멈춘다, 나뭇잎의 버석거림과 떨어진 꽃의 흔적을 바라보며 이제 나는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를 발의 귀에게 물어볼 일이다.

숲 근처 어디선가 해바라기밭이 있고 작은 다리 하나를 건넌다면 사과가 익어가는 과수원이 있다고 한다. 바람결에 가을이 다정하게 들어오고 있다. 여름과 가을이 순식간에 뒤집어진다.

손음(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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