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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말이 주는 힘- 우영옥(시조시인)

기사입력 : 2021-10-28 20:24:10

“선생님!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건강은 좋으시죠?”

여전히 중3 여학생으로 기억에 남아 있는 제자의 목소리, 엊저녁에 받은 안부 전화다. 50대 중반인 이 제자는 나도 까맣게 잊고 있었던 말을 한다.

아흔이 훌쩍 넘으신 어머니께서 편찮으셨는데 요즘은 많이 좋아지셨다며, “예전에 가정방문 오셨을 때, 저를 ‘흙속에 진주 같은 애’라고 말씀하신 것도 기억하고 계시는 걸요.”

교직 첫해, 그때는 가정방문이 있었다. 학생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사흘간 오전 수업을 마치고 오후에 학생들의 가정을 방문하는 행사였는데, 운행 버스가 자주 없는 시골이라 할 수 없이 옆 반 선생님의 오토바이를 얻어 타고 갔다.

이 학생의 어머니께서는 가게도 없는 산골 마을에서 구하기 어려운 ‘환타’ 한 병을 준비해 두셨다가 상에 차려 컵에 따라 주셨다. 우리도 그렇게 커 왔듯이, 이 학생네도 넉넉지 않은 살림이었다. 물론 그 마을 학생들 거의 다 비슷한 환경이었다. 키가 크고 약간 마른 이 여학생은 수줍음이 많으면서도 잘 웃고 예의바른 학생이었다. 그래서 학생의 어머니께 보아왔던 대로 말했던 모양이다.

그때 들었던 말이 그녀에겐 힘이 되었나 보다. 강산이 몇 번이나 바뀌도록 연락을 주고 있으니. 물론 이렇게 좋은 말만 듣지는 않았을 터, 무심코 흘린 말로 상처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힘이 되는 말을 찾아내어 자신의 꿈을 키워왔다는 것은 얼마나 영특하고 또 고마운 일인가! 특히 억센 사투리 억양이라 칭찬도 야단으로 느껴질 수 있었을 텐데. ‘아’ 해도 ‘어’로 받아들이기도 하는 예민한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에는 서운하기도 했을 것이다. 나이가 주는 여유, 말투에 유연함이 묻어있는 지금처럼 이 여유로 대해 줬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칭찬의 말에 인색하지는 않은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경상도 사투리 억양이 따뜻함을 표현하기에는 투박해 보이지만 그래도 말로 표현을 해야 하는 것이다. ‘말 안 해도 알겠지’ 하던 때는 이미 지나갔다. 귀신도 말 안 하면 모른다고 하지 않는가. 더군다나 칭찬은 듣는 사람에게 크나큰 힘이 되고 또 위안이 될 것이니까. 물론 ‘혀 아래 도끼 들었다’는 말처럼 독이 되는 말도 있다.

급변하는 사회의 여러 상황 속에서 공수표로 남발하는 말들도, 남에게 피해를 입히는 말들도 쏟아지고 있는 요즘이다. 인터넷 기사의 댓글 창에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 없이 자신의 감정을 토해낸 막말이 보이기도 한다. 감정에 휩싸여 생각도 없이 말을 하게 되면 원수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조금만 더 ‘나’를 생각하고 ‘너’를 생각한다면 날카롭던 그 감정의 흐름이 무디어질 수 있다. 그러면 얽힌 오해도 풀 수 있는 것이고, 친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내 아이에게, 내 친구에게, 내 이웃에게 따뜻한 말, 정감 가는 말, 용기를 주는 말, 필요하다는 말, 소중하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 등 무수히 많은 따뜻한 표현의 말들을 아끼지 말고 해야 한다. 내 입에서 나가는, 내 생각을 대변하는 나의 말이, 상대방에게 독이 아닌 힘이 되어 주도록 해야 한다. 그게 다시 내게로 부메랑처럼 돌아올 수도 있으니 말이다.

아주 사소한 말 한 마디의 힘, 지금 이렇게 큰 파장으로 신뢰감을 형성해 주고 있는 것이다.

우영옥(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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