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기획] 경남농협 농업 뉴딜 (3) 거제 하청농협 ‘행복마차’

장도 보고 정도 나누는 ‘행복트럭’ 오지마을 어르신 찾아간다

3.5t 트럭 개조한 도내 유일 이동식 마트

시·농협 합심해 추진, 지난 7월부터 운영

기사입력 : 2021-11-09 21:33:49

거제 하청면 해안마을에 사는 윤목자(79) 할머니는 마을회관을 가는 게 낙이었다. 점심도 해결하고 주민들과 만나서 수다 떨고 웃는 일이 일과이자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회관이 문을 닫으면서 주민들과 만남은 줄었고, 일상은 무료함에 우울함으로 바뀌었다. 그러던 중 거제 하청농협의 이동마트인 ‘행복마차’가 그나마 그 자리를 대신하면서 위안을 삼고 있다. 윤 할머니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멀리 장을 보러 나가지 않아도 되고, 물건을 고르거나 사면서 마을 주민들과 얘기 나누면서 정(情)도 나눌 수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고 칭찬했다.

거제 하청농협 행복마차에서 주민들이 물건을 사고 있다./거제 하청농협/
거제 하청농협 행복마차에서 주민들이 물건을 사고 있다./거제 하청농협/

거제 하청농협의 ‘찾아가는 행복마차’가 행복 전령사가 되고 있다. 행복마차는 소외된 농촌마을을 찾아가는 이동식 마트를 말한다. 마트에 한 번 가려면 대중교통을 이용해 30분 넘게 가야 하는 오지마을의 주민들에게 제공되는 일종의 복지 혜택이다. 전방 등 오지에 위치한 소규모 부대를 찾아가는 국군복지단의 이동마트인 ‘황금마차’(다양한 부식을 싣고 다니는 이동식 군대 매점의 별칭)와 비슷해 행복마차로 이름을 붙였다.

이 행복마차는 지난 7월부터 운영되기 시작했다. 농촌 고령화에 따른 거동 불편과 소규모 식료품점 및 재래시장 감소 등 장보기가 어려운 주민들의 사정을 고려한 주영포 조합장의 제안에 거제시와 농협중앙회가 화답하면서 추진됐다. 도농간 삶의 질 격차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농협이 먼저 찾아가는 서비스를 펼쳐야 한다는 생각도 한몫했다. 지방자치단체 협력사업으로 전용차량 구입비 2억1000만원 가운데 거제시가 1억원, 농협중앙회가 4000만원을 지원하고, 나머지는 하청농협이 부담했다.

3.5t 트럭을 개조한 행복마차 안에는 신선식품과 유제품을 취급할 수 있는 냉장·냉동시설과 공과금 결제시스템 등이 갖춰졌다. 직접 행복마차에 올라가 물건을 고를 수 있도록 슬라이드형 계단도 설치하면서 쇼핑하는 즐거움도 더했다. 행복마차에 마련된 제품은 옷가지와 면도기, 건전지, 화장지 등 생활필수품을 비롯해 콩나물, 두부, 달걀, 아이스크림, 음료수, 막걸리 등 신선식품까지 400여 가지가 넘는다. 공과금 수납기도 설치해 은행이나 우체국으로 나가야 하는 번거로움을 해결했다. 지난 여름철에는 마을 주민들이 아이스크림을 구매해 서로 나눠 먹는 소소한 행복도 누렸다.

행복마차는 도내에서 거제 하청면이 유일하다. 매주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4차례 운행하는 행복마차는 월요일과 목요일의 경우, 낙후지역인 하청면 석포리·덕곡리·유계리의 10개 마을을 순회하고, 화요일과 수요일에는 도서지역인 철천도의 9개 마을을 순회한다. 한 마을에 20분간 머무는 행복마차는 외부에 장착된 스피커를 통해 트로트 등 신나는 음악을 틀어 주민들에게 변함없이 도착했다는 신호를 알린다.

거제 하청농협 행복마차에서 주민들이 물건을 사고 있다./거제 하청농협/
거제 하청농협 행복마차에서 주민들이 물건을 사고 있다./거제 하청농협/

김윤주 거제 하청농협 대리는 “지팡이를 짚거나 보행기를 이용하는 어르신들이 많은데, 이들 어르신들은 정말 버스를 이용해 장보기도 쉽지 않으시다”며 “행복마차에서 원하시는 물건을 고를 때와 어르신들끼리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볼 때 흐뭇하고 보람을 느낀다”고 전했다.

차가 없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어르신이나 농사일로 바쁠 시기에 행복마차는 더없이 반갑다. 석포리 금당계마을 주민 옥윤근(64)씨는 “시내버스가 1시간에 1대 있다. 차가 없고 운전을 못하면 장을 보기가 굉장히 불편하다. 콩나물 사려면 고현이나 면사무소가 있는 곳까지 가야 하는데 카드 적립도 되고, 농번기 일할 때도 정말 시간을 아낄 수 있다”며 “행복마차가 오는 날이면 이웃 주민들끼리 연락해 ‘뭐 살꺼 없나, 오늘 행복마차 오는 날이다’고 서로 얘기한다. 누가 했는지 참 잘했다”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거제 하청농협의 매출에서 행복마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다지 크지 않다. 하지만 이 사업은 경제성을 떠나 소외받는 농촌을 위한 복지 제공이라는 게 주 조합장의 얘기다.

주영포 조합장은 “경제성을 보고 시작한 사업이 아니라 농촌지역 고령화와 교통 불편으로 생필품 구입이 어려운 복지사각지대 어르신과 농업인을 위해 추진했다”며 “인구소멸지역이 가속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하청농협이 단초가 돼 거제뿐 아니라 도내 농촌형 농협 전 지역으로 행복마차가 확대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김정민 기자 jmkim@knnews.co.kr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김정민 기자의 다른 기사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