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가고파] 직장 내 괴롭힘- 주재옥(문화체육뉴미디어영상부 기자)

기사입력 : 2021-11-24 20:25:06
주재옥 경제부 기자

드라마 〈미생〉의 안영이는 남초 회사 ‘종합상사’에 수석으로 합격한 여성 신입사원이다. 그녀는 한국사회 구조에서 ‘남자’가 되지 못해 차별을 받는다. 여자라는 이유로 사적인 심부름과 허드렛일을 도맡아야 했다. 임신한 직원이 쓰러지자 “또 임신이라니, 여자들은 이기적이야”라는 비난마저 감수해야 했다. 괴롭힘당할 이유는 없었다. 단지 괴롭힘이 일어나기 쉬운 환경만 존재할 뿐이었다.

▼2014년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이 기내 땅콩 제공 서비스를 문제 삼고, 수석 승무원을 하기 시키면서 논란된 적 있었다.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이다. 갑질을 금지하는 법은 2013년 발의됐다. 당시 주목받지 못해 임기 만료 법안으로 폐기됐다. 이 사건으로 갑질 단어가 통용되자, 국회의원 여럿이 근로기준법과 감정노동자 보호법을 내놨다. 그러나 번번이 법안은 본회의장 문턱을 넘지 못했다.

▼갑질 금지법은 2019년 7월 시행됐다. 한국미래기술 양진호 회장이 직원을 폭행하고 엽기적인 지시를 하는 영상이 공개되면서다. 직장 내 괴롭힘은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지만, 명확히 드러나긴 어렵다. 이 사건으로 괴롭힘 정의가 모호하다며 계류돼 있던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통과됐다. 일명 양진호 방지법으로 말이다.

▼최근 서울대 청소노동자가 휴게실에서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고용노동부는 사망 원인에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다고 판정했다. 서울대 총장은 직무와 관련 없는 필기시험을 보게 하고, 복장까지 제한시킨 관리팀장의 악행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하지만 가해자가 경고 처분에 그치면서 노조가 반발하고 나섰다. 법 시행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법 사각지대는 존재한다. 직장 내 괴롭힘은 경쟁과 갈등 속에서 살아온 직장인들의 방어기제 아닐까. 권력은 행동에 힘을 싣는다. 나의 언행이 상대를 불편하게 하는 건 아닌지 고민하는 역지사지 자세가 필요하다.

주재옥(문화체육뉴미디어영상부 기자)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주재옥 기자의 다른 기사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