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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거기에 맞는 말- 최석균(시인·창원경일고 교사)

기사입력 : 2021-11-28 20:31:20

‘쌤’이라는 호칭이 어색하게 들리던 때가 있었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그 호칭에 익숙해진 지도 꽤 됐다. 되레 지금은 그 말을 편리하게 쓰고 있을 정도니 놀랄 만한 변화다. 올봄, 28년 전 제자로부터 메일이 왔다. 메일 제목이 ‘은사님께’였다. 잊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단어 하나가 화석화된 기억을 따뜻하게 살려냈다.

언어의 역사성을 모르더라도 시기나 대상에 맞는 말이 있음을 우리는 느낌으로 안다. 그것은 어린아이를 대할 때 내지르는 탄성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공적인 직위에 있는 사람이 거기에 어울리지 않는 말을 사용하여 비판받는 사례를 볼 때도 마찬가지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친구나 연인 사이, 사제 간 등 모든 관계를 두텁게 하고 오래 이어가게끔 하는 정감 넘치는 말이 분명 있을 것이다.

잘못 내보낸 말들은 시도 때도 없이 돌아와 마음에 상처를 낸다. ‘같은 말이라도 예쁘고 영리하게 했더라면 그 사람과의 관계가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며 낭비하는 세월이 많다. 이렇게 우리는 말 때문에 맘 상하고 관계가 틀어지는 일이 다반사인 삶을 사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말로 입은 내상은 외상보다 치유가 어렵다는 의미다. 웃느라 한 말에 초상난다는 속담에서 알 수 있듯이 말 한 마디 함부로 낼 일이 아니다.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나희덕)’라는 시 제목처럼 우리는 매일 말의 힘을 체험하면서 살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거기에 딱 어울리는 예쁘고 영리한 말만 주고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환경의 영향을 받는 언어의 특성상, 말은 부지불식간에 나오거나 잘 다듬어지지 않은 채 발화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또 경상도에서 태어나 자라는 순간 경상도 방언의 영향 아래 놓이고 부모가 사용하는 어휘나 말투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거기에 맞는 옷이 있듯 거기에 맞는 말이 있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가족과 친구에게, 동료와 제자에게 삼가지 못한 말이 많다. 이 순간도 누군가를 향해 화살처럼 날아간 말 때문에 다치는 마음이 있다.

최석균(시인·창원경일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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