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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미리벌 화첩- 박태현(시인)

기사입력 : 2022-01-13 20:22:21

농촌의 인구 감소는 어느 농촌이나 비슷할 것입니다. 필자가 있는 이곳 마을도 예외는 아닙니다. 한때 500~600여명이나 되던 마을 사람들이 지금은 100여 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나마 빈집이 절반가량이고, 사람이 사는 집도 대부분 한두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골목에서 아이들을 만나기도 어렵습니다. 간혹 낯선 아이들을 만나면 혈족같이 반갑습니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 있으나, 첫 번째는 자식들이 도시로 떠났기 때문입니다. 도시는 교육 여건이 좋고, 농사짓는 것보다 수입이 많고 사람이 대우를 받는 곳이라 여깁니다.

그러나 속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않은 곳입니다. 수입이 농사짓는 것보다 많은 곳도 아니고, 교육 여건도, 마음이 편하지도 않은 곳입니다.

직장이란 여러 사람이 날마다 뒤섞여 함께 구르는 공간, 상사와 동료들의 눈치도 살펴야 할 것이고, 자기 일에 대한 책임도 따를 것입니다. 그것으로 인한 정신적 육체적 피로감도 느낄 것입니다.

주거환경은 또 어떤가요. 땅마지기를 가지고 있는 집 자식들은 제 집이라도 가질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집 자식들은 전세 아니면 월세로 살고 있을 것입니다. 매달 월급을 기다리며, 아득바득 대출금을 메우며 살아가는 자식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그런데 고향 집에 남겨진 부모님들은 이러한 사정을 모르고, 제 자식이 도시에 가서 크게 성공한 것으로 알고, 날마다 경로당에서 화투패처럼 사랑을 두들기고 있을 것입니다. 이러니 자식들이 농촌으로 돌아와 농사를 짓고 싶어도 용기가 나지 않는 젊은이도 더러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통이 편리한 지금은 어디를 가나 농사환경은 옛날에는 생각도 못 할 만큼 달라졌습니다.

삼사십 년 전에는 딸기나 복숭아를 판매하려면 손수레로 역까지 싣고 가야 했습니다. 노루 우는 새벽 고개를 넘어 완행열차에 옮겨 싣고 도시로 가서 본인이 팔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농사만 지어놓으면, 산지까지 운송 차량을 가지고 와 농산물을 싣고 가 다음 날 본인 통장에 입금해 줍니다.

꼭 딸기 복숭아 농사가 아니라도 좋습니다. 풋고추 농사, 들깻잎 농사, 수박 농사 등 돈이 되는 작목은 얼마든지 많습니다.

필자도 딸기 농사를 이십여 년간 지었습니다. 직장 상사도, 동료도 없는 딸기 농사. 지하수를 이용해 겨울밤 보온을 해 주었고, 야간 전조로 일조량을 인위적으로 조절해 주었습니다. 회사 사무실에 출근한다고 생각하며 딸기 하우스에 출근하였습니다.

윗사람과 동료들의 눈치를 보는 대신 딸기의 눈치를 보았습니다. 농사는 속임수가 통하지 않았다는 걸, 딸기꽃이 하우스 안에서 걸게 웃으며 말해 주었습니다.

딸기가 주는 월급으로 애들 넷을 공부시켰습니다. 딸기가 아들 둘에게 흰 가운을 입혀 주었고, 딸 둘에게 학생들 출석부를 챙겨 주었습니다. 도시가 교육 여건이 좋다는 것도 생각의 차이일 뿐. 사는 것도 어디에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기름진 논밭을 버리고, 인정이 흐르는 밀양강을 끊어버리고, 가뭄처럼 말라가는 도회지 웅덩이에 갇혀 파닥거리는지…. 임인년 정월에 미리벌 화첩을 펼쳐봅니다.

박태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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