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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 토박이말] 옛배움책에서 캐낸 토박이말 (163)

- 줄자, 곧은금, 터, 물매

기사입력 : 2022-01-19 08:08:47
도움= 우리한글박물관 김상석 관장.
도움= 우리한글박물관 김상석 관장.

오늘은 4285해(1952년) 펴낸 ‘셈본 6-2’의 8쪽부터 9쪽에서 캐낸 토박이말을 보여드립니다.

8쪽 둘째 줄에 ‘긴 거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에는 흔히 ‘장거리’라는 말을 많이 쓰기 때문에 아주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거리’라는 한자말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두 개의 물건이나 장소 따위가 공간적으로 떨어진 길이’라고 풀이를 하고 있는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이’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같은 사전에서 ‘사이’는 ‘한곳에서 다른 곳까지, 또는 한 물체에서 다른 물체까지의 거리나 공간’이라고 풀이를 하고 있는데 그 풀이에 ‘거리’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멀 원(遠)’을 쓴 ‘원거리’라는 말도 있는데 아홉째 줄에도 ‘사이’라는 말이 나온 걸 보니 ‘긴사이’, ‘먼사이’라는 말도 쓸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어서 ‘줄자’라는 말이 나옵니다. ‘권척(卷尺)’이라는 말도 있지만 그 말이 아이들에게는 어렵기 때문에 쉬운 ‘줄자’라는 말을 썼지 싶습니다. ‘줄자’는 ‘띠자’라고도 하며 막대 모양의 ‘막대자’와 견줄 수 있는 이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홉째 줄에 ‘곧은금’이 나옵니다. 이 말은 앞서 우리가 흔히 쓰는 ‘직선(直線)’이라는 한자말을 갈음해 쓸 수 있는 토박이말이라고 알려 드린 적이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옛날 배움책에서는 ‘직선’이 아니라 ‘곧은금’이라는 토박이말을 쓰고 있는데 요즘 배움책에서도 ‘곧은금’을 살려 썼으면 좋겠습니다. ‘곧은금’과 맞서는 말인 ‘굽은금’도 있는데 이 말도 ‘곡선’이라는 말에 밀려 쓰이지 않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위에서 ‘자’ 이야기를 했는데 굽은금을 그릴 때 쓰는 자를 ‘운형(雲形)자’라고 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만 ‘구름자’라는 토박이말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도 참일입니다.

열째 줄에 있는 ‘내어다보다’는 ‘내다보다’의 끝바꿈꼴(활용형)인데 ‘안에서 밖을 보다’는 뜻이며 ‘들여다보다’와 맞서는 말입니다.

9쪽 첫째 줄에 ‘학교 터 그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터’라는 말은 요즘 ‘부지’라는 말에 밀려 잘 쓰지 않는 말이 되었는데 옛날부터 ‘집터’, ‘절터’, ‘빨래터’라는 말을 쓰던 사람들에게는 익은 말입니다. 이런 말도 잘 살려 써야겠습니다.

여덟째 줄에 ‘물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수평을 기준으로 한 경사도’라고 풀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집을 짓거나 길을 내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구배(句配)’라는 말을 더 많이 쓴다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기울기’와 같은 말이니까 알아 두면 좋을 것입니다.

이렇게 옛날 배움책을 보면 그래도 토박이말을 잘 살려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토박이말이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우리 삶과 멀어진 것이 토박이말로 된 갈말(학술용어)을 배움책에서 밀어낸 사람들의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잘 썼던 적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고 또 그것이 우리말의 앞날, 우리 아이들의 앞날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 함께 한목소리를 내어서 하루라도 빨리 그 잘못을 바로잡아야 할 것입니다.

사)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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