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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진다- 이현근(창원자치사회부장)

기사입력 : 2022-01-25 21:07:38

사람의 기억은 온전하지 못하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면서 머릿속에 저장된 기억은 오롯이 나만의 것일 뿐 모두와 똑같은 기억은 아니다. 초등학교 동창회에 가면 하나의 오랜 사건을 두고 동창마다 기억하는 것이 모두 다른 경우가 허다하다. 어린 시절이라 곡해되기도 하겠지만 자신의 입장에서 본 극히 주관적인 생각들이 굳어져 진실인 양 옥신각신하기도 한다. 어린 시절 그때 그 사실이 뭐가 중요하겠냐만은 한 가지 일을 두고도 같은 기억을 갖기는 쉽지 않다.

▼산 아래에서 보면 커보이던 산도 막상 정상에 올라가 내려다보면 발아래 놓인 세상에서 아등바등 살아온 게 우습게 느껴지고, 대범해지는 기분도 들게 한다. 내가 선 자리에 따라 시선도 풍경도 마음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것은 그 자리의 무게와 그 자리에서 볼 수 있는 또 다른 더 넓은 세상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자리와 지위를 악용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말이다.

▼사람의 생각은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바뀌게 마련이다. 처지가 바뀌면 생각도 행동도 달라진다. 상대편의 처지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 보고 이해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는 말처럼 이행하기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쉽게 던진 나의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는 힘이 될 수도, 누군가에게는 칼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이 달라진다는 그 말이 꼭 맞아떨어진다.

▼내게도 저 나이가 올까 생각하던 중년이 되고 보니 밑천 없이 호기롭던 부끄러운 날들이 자꾸 생각난다. 부모의 간섭 없이 마음대로 살겠다고 큰소리치던 이십대. 그런 아들을 그저 가만히 바라보시던 아버지. 어느덧 아이들이 이십대로 성장하고 그때 철없는 아들을 바라보던 아버지의 나이가 되고 보니 아주 조금은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어제의 내가 오늘 선 자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지금 각자가 선 자리에서 보이는 시선은 무엇일까.

이현근(창원자치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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