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With 2022 현장] ⑨ 경남혈액원

“혈액 보내달라” 병원마다 아우성… 피 마르는 하루

기사입력 : 2022-04-14 21:30:55

#1. 텅 빈 혈액 보관 냉장실

12일 오전 10시께 대한적십자사 경남혈액원. 건물 앞은 아침부터 의료기관 차량과 혈액공급차량이 분주히 오간다. 각 차량에는 긴급혈액 등 혈액운송상자들이 실렸다.

혈액공급차량의 경우 도로교통법상 긴급자동차로 분류된다. 수혈용 혈액이 필요한 환자에겐 목숨이 달려 있어서다. 도내 수혈용 혈액을 필요로 하는 186곳의 의료기관에서 경남혈액원에 수혈용 혈액이 필요하다며 아우성치지만, 혈액원은 부족한 혈액으로 병원별 공급량을 조절해가며 겨우 버티고 있다.

“최대한 급한 것만 신청해주시고 자제해주세요.” 경남혈액원 공급실 직원들은 각 병원에서 빗발치는 전화 등 혈액 공급 요청에 양해를 구하는 데 바빴다. 공급실 안의 혈액 보관 냉장실은 최대 3500팩(단위)을 보관할 수 있지만 40팩도 채 남아있지 않고 텅 비어 있었다. 도내 혈액 수급난은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뒤로 더 심각해졌다.

창원시 의창구 대한적십자사 경남혈액원에서 직원들이 혈액제제를 끝낸 혈액들을 혈액형별로 분류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창원시 의창구 대한적십자사 경남혈액원에서 직원들이 혈액제제를 끝낸 혈액들을 혈액형별로 분류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창원시 의창구 대한적십자사 경남혈액원 혈액 보관 냉장실에 A형과 O형 혈액이 비어 있다./성승건 기자/
창원시 의창구 대한적십자사 경남혈액원 혈액 보관 냉장실에 A형과 O형 혈액이 비어 있다./성승건 기자/

“혈액 자체가 매우 부족합니다. 의료기관에서 청구 수량이 있는데 다 공급을 못해요.” 노상근 제제공급팀장이 상황의 심각성을 설명했다.

노 팀장은 “도내 의료기관에서 사용하는 수혈용 혈액 공급량이 2019년 17만5553단위, 2020년 18만9단위, 2021년 18만4820단위 등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며 “고령화 등으로 수혈이 필요한 인구는 늘어나는 데 반해 헌혈자는 해마다 줄어드니 문제다. 도내 헌혈자는 2019~2020년 13만명대에서 지난해 12만명대로 떨어졌고, 올해는 사정이 더 안 좋다”고 말했다. 공급실에는 오후 4시까지 도내 각 의료기관에서 수혈용 혈액 총 394팩을 달라는 요청이 왔지만, 혈액 보유량이 부족해 271팩만 출고됐다. 퍼센트로 따지면 68% 정도다.

창원시 의창구 대한적십자사 경남혈액원에서 한 직원이 원심분리를 마친 혈액에서 혈장을 분리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창원시 의창구 대한적십자사 경남혈액원에서 한 직원이 원심분리를 마친 혈액에서 혈장을 분리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창원시 의창구 대한적십자사 경남혈액원에서 한 직원이 채혈한 혈액을 원심분리기에 넣고 있다./성승건 기자/
창원시 의창구 대한적십자사 경남혈액원에서 한 직원이 채혈한 혈액을 원심분리기에 넣고 있다./성승건 기자/
창원시 의창구 대한적십자사 경남혈액원에서 직원들이 원심분리를 마친 혈액에서 혈장을 분리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창원시 의창구 대한적십자사 경남혈액원에서 직원들이 원심분리를 마친 혈액에서 혈장을 분리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노 팀장은 “이나마도 각 병원에 최대한 혈액 요청을 자제해달라고 부탁해서 나온 수치다”고 강조했다. 경남혈액원에선 헌혈의 집 등에서 헌혈한 혈액을 가져와 성분별로 분리하고 검사의뢰를 거쳐 혈액 보관 냉장실에 보관한다. 보통 헌혈을 한 혈액이 의료기관에 공급되려면 하루 정도 걸린다. 우리나라는 수혈용 혈액을 헌혈만으로 자급자족한다.

창원시 의창구 대한적십자사 경남혈액원에서 한 직원이 각 병원으로 보낼 혈전을 운송상자로 옮기고 있다./성승건 기자/
창원시 의창구 대한적십자사 경남혈액원에서 한 직원이 각 병원으로 보낼 혈전을 운송상자로 옮기고 있다./성승건 기자/
창원시 의창구 대한적십자사 경남혈액원에서 한 직원이 각 병원으로 혈전과 혈액이 담긴 운송상자를 옮기고 있다./성승건 기자/
창원시 의창구 대한적십자사 경남혈액원에서 한 직원이 각 병원으로 혈전과 혈액이 담긴 운송상자를 옮기고 있다./성승건 기자/

의료기관 혈액 요청 빗발치지만
텅 빈 혈액보관실 40팩도 안남아
혈액 부족해 양해 구하는 게 일
필요한 수혈용 혈액 매년 늘지만
해마다 헌혈자 줄어 수급난 심각

사고현장·헌혈현장 뛰고 달리고
수혈 시급한 곳 지체없이 출동
“혈액 이송은 생명 살리는 일
환자 살린다는 사명감으로 일해”
단체헌혈 현장엔 기쁘게 달려가

#2. 발 벗고 뛰어다니는 직원들

“저는 스페어 타이어죠.” 수혈이 시급한 환자들에게 혈액이 전달되기까지 혈액 이송을 책임지는 직원들의 숨은 노력이 있다. 이들은 의료기관으로 긴급하게 혈액을 직접 이송하기도 하고, 권역별로 혈액 부족분을 주고받기도 한다. 수도권 등지로 급히 혈액을 주고 받을 때는 김해국제공항으로, 인근 지역에서 혈액을 주고받을 땐 고속버스터미널로 급히 달려간다.

혈액 이송만 15년간 맡고 있는 조영효 총무팀 운영장이 자신을 ‘스페어 타이어’로 표현했다. 그는 헌혈버스나 혈액공급차량의 일정이나 경로 등을 총괄하지만 급할 땐 언제든 현장에 투입되기 때문이다. 조 운영장은 “우리는 철저히 계획에 따라 움직인다. 대형사고가 났을 때는 혈액공급차량의 사이렌도 울리고 급하게 이송을 한다.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혈액을 이송한다”고 말했다. 조 운영장은 “혈액을 이송하다 보면 택배 기사분들이 겪는 고충을 우리도 같이 겪는다. 혈액이 많으면 운반 수레에 실어서 가기도 하는데, 엘리베이터를 탈 땐 우리가 후순위가 되는 등 여전히 우리의 일을 낯설게 보는 시민들이 많은데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하는지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고 말했다.

창원시 성산구 한국폴리텍대학Ⅶ 창원캠퍼스에서 학생들이 헌혈을 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창원시 성산구 한국폴리텍대학Ⅶ 창원캠퍼스에서 학생들이 헌혈을 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3. 오늘도 내일도 헌혈버스는 달린다

 이날 경남혈액원에 있는 헌혈버스 6대가 모두 단체헌혈을 위해 출동했다. 4대는 한국폴리텍대학 창원캠퍼스, 1대는 함안군청, 1대는 거제경찰서다. 각 헌혈버스는 경남 어디든 단체헌혈이 필요한 곳이면 찾아간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뒤 헌혈버스는 군부대나 학교, 기업체 등 단체헌혈이 대폭 줄면서 주차장에 세워두는 날도 많았다.

 오늘처럼 6대가 모두 단체헌혈이 예약된 것은 행운인 날이다. 화창한 봄날, 대학 캠퍼스 본관 등 곳곳에 마련된 헌혈버스엔 모처럼 많은 청춘들이 헌혈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면서 활기를 띠었다. 버스 외관은 ‘#혈액절대부족’ 등 안내문을 붙여둬 대학생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날 창원캠퍼스에서만 총 123명이 헌혈했다.

 버스 안에서 하는 헌혈은 보통 직원이 4인1팀을 이룬다. 반장을 맡는 운전기사들이 안내를 하고, 전자문진을 거치면 간호사들이 일대일 문진을 통해 통과를 하면 채혈을 한다. 헌혈자들은 15분 정도 쉬고 귀가하는 데, 쉬는 동안 초코파이와 이온음료 등 꿀맛 같은 간식을 즐기고, 손에 헌혈 기념품 한 꾸러미를 챙겨갔다.

 생애 첫 헌혈을 한 대학 2학년생 이광욱(32)씨는 “헌혈을 안 해본 사람들은 막연하게 두렵고 거부감이 있을 것 같은데 경험을 해보면 좋을 것 같다”며 “작은 선행이지만 혈액이 부족한 환자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헌혈버스 한대를 책임진 심주연 헌헐개발팀 대리는 “혈액 수급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더 부지런히 움직이려고 노력을 한다”며 “헌혈에 많이 참여해주시면 더 뿌듯하고 보람차다”고 했다. 또 김경수 차량주임은 “매일매일 헌혈자들이 많이 와줬으면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버스를 출발한다”고 말했다.

 윤정진 간호사는 “요즘 병원에 수혈용 혈액이 많이 부족해 환자의 보호자나 지인 등이 지정헌혈을 많이 하고 있다”며 “헌혈은 수혈이 필요한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저도 환자 1명이라도 더 살린다는 사명감을 갖고 헌혈을 받는다”고 전했다.

창원시 의창구 대한적십자사 경남혈액원에서 한 직원이 각 병원으로 보낼 혈액을 운송상자로 옮기고 있다./성승건 기자/
창원시 의창구 대한적십자사 경남혈액원에서 한 직원이 각 병원으로 보낼 혈액을 운송상자로 옮기고 있다./성승건 기자/

김재경 기자 jkkim@knnews.co.kr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김재경 기자의 다른 기사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