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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인재 등용- 이준희(정치부장)

기사입력 : 2022-05-15 20:32:35

“나는 어찌하여 일신이 적막하고 부형(父兄)이 있으되 호부호형(呼父呼兄)을 못 하니, 심장이 터질 것 같구나. 어찌 통한할 일이 아니리오!” 이 대목은 ‘홍길동전(허균)’에 등장하는 길동의 탄식이다. 홍판서의 시비 춘섬의 소생인 서자(庶子) 길동은 어려서부터 총기가 돋보여 장차 훌륭한 인물이 될 기상을 가졌으나 서얼이라는 신분적 한계로 과거에 나갈 수조차 없었다. 결국 길동은 도적의 두목이 됐다.

▼‘서얼’은 양반의 자손 가운데 첩의 소생을 이르는 말이다. 조선 초 1차 왕자의 난 이후 태종은 부친이 명문가라 할지라도 외가 쪽이 천민의 피를 이은 정도전과 같은 이들이 나타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정실부인 이외의 자식들은 조정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했다. 이것이 서얼제도의 시초가 됐다. 양민의 첩에서 낳은 아들은 서자이고, 천민의 딸에게서 낳은 자식은 얼자였다. 이 둘을 합쳐 서얼(庶孼)이라 했다.

▼서얼의 차별로 인한 폐해는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조선시대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에 보면, 서얼은 문과, 생원, 진사시에 응시하지 못했고 이에 따라 양반관료의 등용문인 과거는 응시조차 할 수 없었다. 설령 등용이 된다고 하더라도 아버지의 관직과 어머니의 신분에 따라 한계가 있었다. 이런 신분적 한계를 개혁한 이가 바로 ‘인재 육성’을 부르짖은 정조의 ‘서얼허통’ 결단이다. 정조는 신분 질서 등을 이유로 기득권을 지키려는 사림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개혁을 위해 인재를 고루 등용했다.

▼국민이 잘사는 평안하고 부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인재 등용’이다. 정조가 능력 있는 인재를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발탁했듯, 새로운 정부는 사사로운 정에 얽매이어 사람을 선발하지 말고 능력과 인품을 고루 갖춘 인재를 뽑아 이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하게 해야 한다. 좋은 인재를 찾아 기용하는 것이 리더의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일 것이다.

이준희(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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