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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파리 몇 마리- 정희숙(아동문학가)

기사입력 : 2022-06-09 20:17:30

집안에 파리가 몇 마리 날아다닌다. 어디서 생겨났을까. 음식물 쓰레기를 방치한 적 없으니 집안에서 생겨났을 것 같지 않다. 방충망도 잘 닫혀 있는데 어떻게 들어왔을까. 어쨌든 차 안에 갇힌 파리도 내보내기 어렵더라. 이제 파리와 동거하게 생겼다. 파리 몇 마리 있다한들 크게 해될 것 없다. 혼자 지내기에 나만 내버려두면 그만이다. 웬만하면 공존공생 하자는 게 내 개똥철학이다. 밥상에만 기웃거리지 않으면 눈감아 주리라. 밥상에 날아든다 해도 손짓으로 쫓으면 된다. 예전의 시골 파리처럼 화장실과 두엄더미처럼 불결한 곳에 앉았을 리도 없다. 모기처럼 무는 것도 아니다. 파리가 살면 얼마나 살겠는가. 며칠간의 비행정도야 너그러이 봐줄 수 있다.

화분에 물 주다가 알았다. 유산균 만들다 실패한 우유를 화분에 묻은 게 화근이었다. 시골 갈 때 밭에 버리려고 유리병에 보관했던 우유다. 벌레 생길까봐 흙으로 꼼꼼하게 덮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까 희끗희끗하다. 하긴, 파리가 바깥에서 들어왔을 리 만무하다. 흙 한 줌 없는 길바닥, 가을 은행잎조차 떨어지기 바쁘게 쓸어버리는 아파트 단지에 파리의 서식이란 당치도 않다. 파리의 출현에 우리 집도 뭇 생명이 생길 만큼 친환경적이라며 좋을 대로 생각했다. 귀촌해서 온갖 해충에게 시달리며 친환경적으로 농사짓는 지인은 도시엔 벌레 한 마리 살 수 없다며 핀잔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때 아들딸이 올 거라고 했다. 집안의 파리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나의 불찰을 나무라며 파리채와 제충제 찾느라 야단일 테다. 다양한 생명체와 환경 운운하면 우리 집안부터 깨끗하고 위생적으로 하라겠지. 파리도 살리고 애들의 핀잔도 피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깨끗함에 대한 기준은 저마다 다르다. 깨끗한 것만이 상책도 아니다. 뭇 생명이 살 수 없는 환경은 분명 우리에게도 이롭지만은 않다. 지나친 청결주의가 환경오염으로 이어져 전염병이라는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 해충 없이 깨끗하고 위생적인 환경도 좋지만 그에 상응하는 대가도 치러야 한다.

곰팡이와 해충방제 등 각종 화학살균·살충제의 남용으로 ‘지구의 청소부’라는 자연미생물이 사라져 간단다. 미생물이 없으면 동식물의 사체와 배설물이 분해되지 않아 생태계가 순환되지 않는다. 그러면 세균이 들끓어 전염병 발생으로 이어질 수 있다. 폐수처리장에서도 미생물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단다. 인조미생물이 개발된다고 해도 수십억 년 동안 진화해온 자연미생물과는 견줄 바가 못 될 거라고 한다. 화학살균·살충제에 대한 의존은 발등의 불을 끄는 격이다. 코로나19처럼 부득이한 경우를 위해 무분별한 살균·살충제의 사용을 최대한 자제하면 좋겠다. 우리의 지나친 위생주의가 미래 세대에게 해악이 될 수 있음을 되새겨야 하리라.

선의에 대한 보답일까. 다행히 아들딸이 오기 전에 파리들 스스로 자취를 감추었다. 이제 집안 구석 어딘가에 마른 사체로 머물다가 청소 할 때 발견될 수도 있다. 파리채로 때려잡으면 환경오염과 무관할 것을, 그깟 파리 때문에 고민했다니. 유별나다며 세간에 웃음거리 되겠다. 하지만 파리를 위한 아량은 내 방식의 생태계 보존이요, 자연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이다.

정희숙(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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