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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조례’ 어때요] (1) 경남말(지역어) 보존·활용

우리 갱남말 다 없어지뿌기 전에 조례 맹글어 지키야 안되것나

기사입력 : 2022-07-05 21:50:02

역사·전통 담긴 지역어 소멸 중

일제강점기 표준어 정책·수도권 집중화 탓
경남 지역어 조사서 초중생 대부분 안 쓰고
문화 잠재력에도 민간 차원 보존 그쳐 한계


조례 개정으로 육성·활용해야

창원 등 도내 지자체 7곳만 관련 조례 시행
지역어 보존, 기존 정책과 조화롭게 추진해야
‘경남 우리말 바르게 쓰기’조례 개정 검토를


조례의 사전적 의미는 ‘지방자치단체가 어떤 사무에 관하여 법령의 범위 내에서 지방 의회의 의결을 거쳐 제정한 법’입니다. 그 지역의 법이란 뜻이지요. 그래서 지역민들의 일상생활에도 크고 작게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습니다.

7월 제12대 도의회 출범에 맞춰 경남 도민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조례를 ‘이런 조례 어때요?’를 통해 경남신문이 제안해봅니다. 경남말(경남지역어) 보존·활용 조례 제안을 시작으로 시리즈를 총 4차례에 걸쳐 격주 한 번씩 싣습니다.



▲경남 : 추석 연후(연휴)가 우째 이래 퍼떡 가뿌노. 그래도 고향 김해 가가 친구들 만나이 억발로 좋더라꼬. 오랜만에 어불리가 일마, 절마 캐삼(쌈)시로 술도 묵고 노래도 하이 기분이 지기주더라꼬.

△서울 : ‘어불리가’는 ‘어울리다’ 뜻인 건 아는데, ‘일마’, ‘절마’는 처음 들어. 무슨 뜻이야?

▲경남 : ‘일마’는 ‘이 녀석’이나 ‘인마’의 경남말인 기라. ‘절마’는 ‘저 녀석’이라 카는 뜻이고. 경남방언사전을 보이 일마, 절마 칼 때 어원에 이끌리가 ‘놈’으로 풀이하는 거는 바람직하지 않다 카더라꼬. 표현이 점잖은 거는 아이지만 ‘놈’과 같이 욕으로는 안 들린다 아이가.

△서울 : 나도 ‘놈’이라고 느껴지지는 않는데. 바로 옆에 있으면 ‘일마’, 저쪽에 있으면 ‘절마’라고 하면 되겠네. 일마, 절마와 비슷한 뜻으로 쓰이는 말은 없어?

▲경남 : 와 없겄노. ‘글마’도 있꼬, ‘욜마’도 있다. ‘글마’는 ‘그 녀석’이라 카는 기고, ‘욜마’는 ‘요 녀석’이라 카는 뜻이다. 추석에 억수로 보고 접은 친구가 있었는데 몬 봐서 데기 아숩더라꼬. 일마도 절마도 욜마도 글마 전화번호를 모리더라꼬.(경남신문 2017년 10월 13일 ‘경남말 소쿠리’ 中)


경남 ‘지역어’(특정지역에서만 사용하는 음성·음운·문법·어휘체계)는 경남 사람들이 삶의 현장에서 사용하는 말이다. 지역 고유의 역사와 전통, 문화가 반영돼 있는 소중한 문화 자원이지만 빠른 속도로 사라져 가고 있다.

◇소멸하고 있는 지역어= 국립국어원이 지난 2020년에 실시한 국민의 언어 의식 조사에 따르면 표준어를 사용한다는 응답자는 56.7%로 2005년 47.6%에 비해 9.1%p가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표준어 사용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한 반면 경상 지역어와 전라 지역어 사용률은 2005년 각각 27.9%, 13.5%에서 2020년 22.5%, 10.3%로 감소 추세에 있다.

진주로 한정해 보면 경상국립대 국어문화원이 지난 2019년 3개월간 초·중·고·대학생, 성인 등 진주시민 3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경남 지역어 실태조사’ 결과 ‘에나(정말, 진짜, 참말)’의 경우 초등학생은 80% 이상, 중학생은 60% 이상이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고, ‘공연히’를 뜻하는 ‘베끼’와 ‘겨우, 빠듯이’를 뜻하는 ‘보도시’는 초중고 학생은 10% 미만, 대학생과 성인은 20% 미만이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현상은 일제강점기 당시 마련된 표준어 중심의 언어 정책이 해방 이후에도 계속 이어져오며 국가에 의해 강조되는 데다 수도권 인구 집중화에 따른 언어 환경 변화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국립국어원은 “그동안 교육, 방송 등 공적 영역에서 표준어가 사용되고, 수도권에 인구가 집중되면서 표준어 사용에 관심이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왜 보존해야 하나= 한국어 어문 규범 표준어규정 해설을 보면, 표준어는 ‘교양 있는 사람들(사회적 기준)이 두루 쓰는 현대(시대적 기준) 서울말(지역적 기준)로 정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의사소통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서울을 지역 기준으로 삼아 공용어적 성격을 드러낸 것이다.

표준어 개념에 한국어를 대표한다는 공통어의 개념이 포함돼 있지만 분명한 한계도 드러내고 있다. 언어 사용 현장의 구체성을 드러내지 못하고 지역어에 담겨 있는 지역민의 삶과 정서를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는 까닭에서다.

이태영 전북대 명예교수는 지난 2019년 한국문학어문학회가 펴낸 어문론총 제82호 ‘지역어의 역할과 현실대응’을 통해 “현재 우리나라의 표준어는 한국어를 대표하기에는 어휘의 숫자나 의미 파악 등이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며 “방언 어휘가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규칙으로 생성된 것인지, 표준어의 어휘와 어떤 상관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밝히지 못한 데 있다”고 설명했다.

지역 소멸 위기가 국가적 의제로 떠오르면서 지역어 소멸에 대한 대응 필요성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지역어 소멸 문제가 단순히 특정 지역에서 쓰이는 언어체계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지역 문화유산이 소멸하는 것이란 인식에서다.

드라마에서 매우 이례적으로 자막을 써가면서까지 제주지역어를 쓰는 ‘우리들의 블루스’의 인기에서 보듯 문화콘텐츠로서 지역어가 가진 잠재력이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지역어에 대한 긍정적 인식도 차츰 높아지고 있다. 국립국어원이 지난 2020년에 실시한 국민의 언어 의식 조사를 보면 지역어 사용자에게 친근하고 편안함을 느낀다는 답변은 79.9%로, 최근 10년 사이에 21%p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어 육성·활용 어떻게?= 정부 차원에서는 국립국어원을 중심으로 지역어 보존을 위한 조사와 연구가 이뤄지고 있지만 지역어 소멸에 본격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다각도의 노력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지역어의 중요성과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경남의 지역어 활용 실태는 시·군 문화원이나 재야학자를 중심으로 한 민간 차원의 수집·보존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18개 시군의 지역어를 집대성한 자료로는 지난 2017년 (사)경남방언연구보존회가 경남도 지원으로 제작한 ‘경남방언사전’이 유일하다. 최근 수집 및 연구로는 진주사투리사전(진주관광재단), 창녕방언사전(창녕문인협회), 경남 지역어 사용실태(경상국립대 국어문화원) 등이 있다.

지역어 보존과 육성을 위한 조례 입법도 미미하다. 경남도 자치법규 중에서는 ‘경상남도 우리말 바르게 쓰기 조례’와 ‘경상남도 문화예술진흥 조례’가 있다. 도내 기초지자체 중에서는 창원, 진주, 통영, 거창, 함안, 합천, 남해 등 7개 시·군만이 지역어 보존 규정을 둔 조례를 시행 중이다. 다만 현행 조례들이 실태 파악과 보존을 위한 사업 지원을 담고 있지만 단체장 책무 중 보존을 다루는 선에서 그치고 있다.

기초지자체 차원에서 지역어 보존·육성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인 지자체는 강원 강릉시다. 강릉시는 지난 2020년 ‘국어 진흥 및 지역어 보존·육성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는데, 국어 진흥과 지역어 보존·육성을 동등하게 명시한 게 특징이다. 강릉시는 이 조례를 근거로 강릉사투리보존회·강원도민일보와 함께 강릉말 전승·활용 방안 토론회와 강릉사투리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경남 지역어 위상을 제고하고 내실 있는 지역어 보존과 육성을 위해서는 경남 차원의 조례 개정이 필요하다는 정책 제언도 나오고 있다. 소멸위기에 처한 문화유산 보존이라는 기본 목적 외에도 지방자치제 부활과 지방자치법 개정, 지방분권 강화 측면에서도 경남 지역어 활용이 의미를 가질 것이란 인식에서다.

김유경 경남도의회 정책지원관은 지난 4월 발행된 정책프리즘 통권 31호를 통해 “지역어 보존과 육성이 별도로 추진되기보다 기존 정책과 조화롭게 추진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며 “‘경상남도 우리말 바르게 쓰기 조례’를 경상남도 우리말 바르게 쓰기 및 지역어 보존·육성에 관한 조례로 개정 검토를 제언한다”고 밝혔다.

김 지원관은 특히 지역문화·행정과 연계한 지역어 사용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현재 경남도가 진행하고 있는 지역어 관련 사업이나 정책이 전무하므로 타 시·도 사례를 참고해 경남도 직속기관·사업소나 출자·출연기관의 사업 중 지역어 진흥을 위한 사업을 마련하고, 경남도의 자체 계획·사업·시설명칭·상징·구호 등에 한해 반드시 지역어를 활용토록 규정하는 내용을 담은 조례·규칙 마련이 방안이 될 수 있다”며 “이와 함께 도민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물리적 허브로서 공간 마련, 2025년 개관 예정인 국립국어원 지역어 디지털박물관 콘텐츠 연계 등도 필요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도영진 기자 doror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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