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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숭고한 직업의 농부님께- 정희숙(아동문학가)

기사입력 : 2022-07-07 20:22:18

비님이 오신다. 참 오랜만의 비다운 비다. 후두두둑, 다다다다. 팽팽한 비닐하우스를 때리는 빗소리가 경쾌하다. 내 목의 갈증이 해소되는 것처럼 시원하고 반갑다. 산천초목이 생기를 되찾아 환희의 물결로 일렁이겠다. 농작물이 말라 애를 태우던 농민들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겠다.

어느 농부가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가뭄으로 어렵사리 모내기를 마쳤건만, 열흘 만에 논이 말랐다며 걱정이었다. 물을 찾아 헤매던 우렁이가 마른 논바닥에서 죽어간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웅덩이도, 저수지도 말랐건만 정치인도 언론도 관심이 없더라며 탄식이었다. 예전에는 가뭄 극복을 위해 소방차까지 동원해 가당찮은 성의를 보인 적도 있었다며, 정부와 언론을 비난하는 댓글이 달렸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 발발 5개월째. 우리의 뼈아픈 역사를 돌아보는 것 같아 안타까운 가운데, 그로 인한 식량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식량창고, 유럽의 빵바구니’라지만 전쟁으로 밀과 옥수수 생산 감소에 이어 러시아의 흑해 봉쇄로 수출길도 막혔다. 세계 2위 밀 생산국인 인도는 자국과 이웃 나라의 식량안보를 위해 수출을 금지했다. 세계 3대 곡창지대인 미국과 아르헨티나는 가뭄으로 밀과 옥수수 생산량이 크게 줄어들 것이란다. 러시아는 곡물 수출을 않겠다며 식량의 무기화에 나섰다.

우리와는 먼 나라의 일이라 피부에 와 닿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식량자급률은 절반의 반도 안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최하위다. 식량 위기는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다. 우리의 주 수입처인 미국이 밀과 옥수수 수출을 줄이면 그야말로 낭패다.

예전에는 몰랐다. 옛날 사람들이 왜 농사를 천하의 근본이라고 했는가를. 유사시 종국에는 먹는 게 가장 중요하다. 식량은 비싸다고 안 살 수도 없고, 급하다고 당장 만들어 낼 수도 없다. 가공식품도 대부분 농산물을 원료로 한다. 수년 전, 신문에서 읽은 글이 잊히지 않는다. 상인은 적게 일하고 이익을 많이 남기지만, 농부는 많이 일하고 적게 남긴다고. 그러기에 농업이 숭고한 직업이라던가. 농부도 농부 나름이긴 하다. 세계 식량 시장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다국적 농업 기업도 있다. 그들이 투기 세력과 합세해 식량 가격 인상을 조장한다는 소문이 사실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농사일은 첨단과학의 사각지대다. 농기구의 발달이 예전에 비할 바 아니나 사람 손으로 해야 할 일이 따로 있으며 가뭄에도 취약하다. 웅덩이와 저수지가 마르면 양수기가 있어도 손쓸 방법이 없다. 지하수인들 무궁무진하랴. 장맛비로 피해를 본 특화작물 재배 농가도 있지만 강수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비가 올 거라던 기상예보는 번번이 빗나갔다. 아마도 농부의 우렁이는 벌써 말라서 다 죽었을 것이다. 이대로 장마가 끝나면 벼는 물론 대부분의 농작물도 여름을 버티기 힘들 테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우리, 농업을 홀대하지 말자. 모두 등진 고향을 지키며 먹거리를 생산해내는 농민들의 고충을 헤아리자. 그들의 애타는 마음을 함께 나누자.

숭고한 직업의 농부들이시여, 고맙습니다! 힘내소서.

정희숙(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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