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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진등재를 아십니까- 전창우(수필가)

기사입력 : 2022-07-14 20:32:34

국사봉과 천황산과 미타산에 포근하게 둘러 싸여있는 의령군 부림면 권혜리 상권마을. 진등재는 이 마을에서 초계로 넘어가는 큰 고개 이름이다. 40년 전만해도 행정구역이 합천이라 온몸으로 넘나들어야하는 삶과 애환의 고개였다.

지금은 사람의 발길이 끊어져 바라만 볼 수 있는 의령군과 합천군의 군계능선으로만 존재할 뿐이며 그 시리고 막막한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그리움의 능선이 됐다.

당시는 초계까지 왕복 40리 길을 타박타박 걸어서 다녀야만 했다. 걸어서 시장도 보고, 사람도 만나고, 학교에 다니고 세상과 소통을 했다. 40~50년 전의 그곳은 행정력마저 미치지 못했다. 외부와는 아예 단절된 세계였을지도 모른다. 가끔 마을과 마을을 오가는 봇짐장수나 3일 만에 한 번씩 오는 우체부로부터 듣는 애기가 유일한 바깥소식이었다. 그러면서도 분명 크고도 완벽한 하나의 독립된 세계였다.

‘겨울밤 세석에서’의 작가는 그 척박한 곳에서 태어났다. 소년시절, 둥근 하늘 아래로 울타리처럼 쳐져있는 좁은 산지평선 안이 공간의 전부였으며 세상에서 가장 높고 커다란 영토로 생각했다. 그 산울타리 안에서만 세계의 모든 삶과 역사가 이뤄지는 줄로만 알았다.

성장하면서 저 산 너머에는 무엇이 있으며 누가 살고 있을까 하는 동경이 일었다. 산 넘고 또 넘어서 그렇게 걸어온 길, 오늘 여기 국어교사 30년 차를 넘어 수필가가 되고, 대학교수가 되고, 국어교과서에 작품이 실리고, 문학교과서를 만들고, 주요문학상 수상으로 정상의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60여명의 작가를 직접 길러내어, 진등재문학회를 창립하고, 진등재문학상을 제정했다. 그 애환의 땅 진등재가 문학의 성소와 희망의 상징으로 세상에 우뚝 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생애 모두를 바친 멀고 먼 고난의 역정이었다.

그 역시 한때는 현실적 명예와 욕망의 갈림길에서 뜨겁게 가슴을 태운 적도 있지만 그 불같은 욕망들을 지리산 사랑과 문학으로 승화한 이후로는 참으로 편하기만 하다고 회상한다. 요즘도 꿈속에서 유년시절의 동산이 나타나고 동무들과 소떼를 몰며 진등재에서 바라보았던 그 아득한 풍광들이 되살아난다고 한다.

매년 11월 첫 주, 붉게 물든 낙엽이 절정에서 떨고,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따스한 날 진등재문학제가 열린다. 벌써 여덟번째다. 진등재가 빤히 바라보이고 겹겹이 여울진 산들이 20리 밖까지 조망되는 작가의 생가 마당에서 문학제의 막이 오른다. 백여명의 작가들이 옹기종기 함께한다. 바람은 소슬하고 새털구름 한 무리 풍요로운 가을 산의 단풍위로 유유히 흘러간다. 자연이 무대이자 장식이다. 오밀조밀 구불구불한 계단식 논은 척박하고도 가난했을 삶의 풍경을 그대로 보여준다. 진등재의 정기로 동인지 ‘진등재수필’이 나온 것이라 생각하며 천지신명께 감사드린다. 모인 분 모두에게 행복과 문운이 함께하기를 기원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온몸으로 문학을 사랑하며 오래 흔들림 없이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들의 영원한 축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전창우(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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