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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나의 그늘은- 김효경(시인)

기사입력 : 2022-07-28 20:24:00

중복을 지내고 여름이 절정이다. 지구촌의 이상기온이 이미 익숙한 뉴스가 되어버렸기에 장마 뒤로 폭염이 이어질 거라는 예보에도 그러려니 한다. 모시 적삼과 부채 하나로 여름을 나던 옛사람들을 생각하면 못 견딜 더위도 아니지만, 혼자 집에 있으면서 에어컨 켜기란 여간 간 큰 짓이 아니다. 어쨌든 무더위가 지속되면 우선 햇볕을 피할 그늘을 찾게 마련인데, 그늘이라면 정자나무가 단연 최고 아닌가.

우리나라 60대 이후 시골이 고향인 사람은 여름날 등목을 하던 우물가나 동무와 물장구치던 냇가에 대한 기억도 있겠지만, 나뭇가지를 타고 놀던 정자나무와 그 나무 그늘 또한 잊지 못할 거다.

필자도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고향마을 서낭당 음나무 그늘에 대한 기억이 있다. 나뭇가지에 단옷날 어른들이 매달아 놓은 그네가 있었는데, 작은 발로 아무리 차고 굴려도 도무지 올라가지 않던 기억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지만 어쩌다 옛 생각에 잠길 때면 입술이 부르트도록 놀던 여름 바다 다음으로 떠오르는 정든 곳임이 틀림없다.

마을에 좋은 일이 있을 때 잔치를 벌이는 마당이 되어주고 때로는 간절한 마음으로 찾아가는 성스러운 기도처가 되어주기도 하는 정자나무 그늘은 마을의 역사요, 계절 없이 마을 어른들과 아이들의 훌륭한 쉼터였음을.

요즘 드라마에 나오면서 화제가 되는 노거수가 있다. 창원시 의창구 대산면 북구리 동부마을 뒤 언덕에 있는 수령 500년의 팽나무(창원시 보호수)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드라마에서는 ‘소덕동 팽나무’로 나오며 천연기념물이 되는데, 어쩌면 현실에서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노거수 중 팽나무는 두 그루란다. 경북 예천 금남리의 팽나무(황목근)와 전북 고창 수목리 팽나무가 그것인데, 예천 팽나무는 사람처럼 성(性)과 이름도 있다. 성은 누런 꽃을 피운다고 하여 황, 이름은 ‘근본 있는 나무’라는 뜻으로 목근이라고 지었단다. 그뿐만 아니라 약 3900평 정도의 토지까지 소유해 세금도 납부하고 있다고 하니 나무를 사람처럼 여기는 점이 특이하긴 하지만 그만큼 마을과 공동체라는 걸 말해준다 하겠다.

더위에 길을 걷다 만나는 나무 그늘은 얼마나 큰 위안인가. 평소 눈길 한번 주지 않던 나무 아래에서 땀을 식히다 보면 방금까지 토하던 울분이 삭아지고 갈등으로 들끓던 속도 죽는다.

그늘은 그렇게 우리 마음을 쉬게 해주고 숨을 바로 하게 한다. 그곳에서는 상처를 꺼내 보기보다는 가만히 덮어두라 하며 나눔과 배려, 화해와 같은 긍정의 생각과 감사의 마음을 가지라 한다.

그늘은 또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머리 굴려 계산하지 않고 누구는 와도 되고 누구는 오면 안 된다고 차별하는 일도 없다. 사람처럼 누구를 험담하거나 불평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이야기들을 묵묵히 들어줄 뿐, 자기가 드리운 그늘을 찾아오는 이를 마냥 품어준다. 우리네 어머니같이.

사람이라고 그늘이 없을까. 다만 그 그늘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각자 생각의 차이가 있을 뿐인데, 분명한 건 그 생각의 차이가 사람 맛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정호승 시인의 시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라는 구절이 많은 독자의 가슴을 울리는 것도 그런 의미 때문 아닐까. 세상이 많이 인색해졌다. 그러나 나무 그늘은 그렇지 않다. 이쯤에서 한번 생각해보자. 내가 가진 그늘은 어떤지.

김효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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