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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4000쌍 무료 결혼식’ 올려준 아버지 선행 가족이 잇는다

백낙삼 마산 신신예식장 대표 뇌출혈로 쓰러져 3개월째 투병

아들이 사진 찍고 친척이 주례… 아내가 백씨 대신 예식장 운영

기사입력 : 2022-08-01 21:46:24

“우리 아저씨가 빨리 나아야 합니다. 예전처럼 같이 일할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어요. 남편이 자리를 비워도 예식장은 아들과 같이할 겁니다. 지금까지 고생한 남편, 찾아주시는 손님들 생각하면 절대 못 그만둬요.”

54년 동안 1만 4000쌍의 부부에게 무료로 결혼식을 올려준 백낙삼(90) 신신예식장 대표가 뇌출혈로 쓰러진 지 3개월. 백 대표를 대신해 예식장을 운영하고 있는 부인 최필순(81·여)씨는 인터뷰 중 남편을 생각하며 눈가에 맺힌 눈물을 떨리는 손으로 훔쳤다.

지난해 11월 백낙삼 대표가 예식장 앞에서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경남신문 DB/
지난해 11월 백낙삼 대표가 예식장 앞에서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경남신문 DB/

1일 오전 11시께 찾은 창원시 마산합포구 신신예식장은 영화 세트장에 온 것처럼 옛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곳곳에 백낙삼 대표가 직접 쓴 글들과 그간의 활동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제일 눈에 띄었던 것은 부인 최씨와 함께 찍은 수십 장의 사진이다. 백 대표는 부인에게 청혼할 때 “가진 것 없지만 당신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맹세했다고 한다. 같이한 세월은 반세기가 넘었지만, 부부의 사랑은 여전히 신혼이다.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죠. 기절할 만큼 놀랐고 만약 그때 남편이 의식을 차리지 못했다면 나도 그 자리에서 죽었을 거예요.” 백 대표는 지난 4월 18일 오전 6시께 건물 옥상에서 쓰러졌다. 1시간 뒤 최씨가 남편을 발견해 응급실로 옮겨졌다. 병원에선 그가 뇌출혈로 하루빨리 수술해야 한다고 했지만, 최씨는 고령인 남편이 수술하면 다시 깨어날 수 없을 것 같다며 반대했다. 결국 약물 치료를 선택했고 다행히 백 대표는 쓰러진 지 1시간 만에 눈을 떴다. 최씨는 의식을 되찾은 남편에게 “살아줘서 고맙다”고 말했고, 백 대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아내를 달랬다. 백 대표는 현재 간단한 의사소통은 가능하지만 일부 팔·다리가 마비돼 재활치료를 받는 중이다.

백낙삼 대표가 잠깐 비운 자리는 그의 가족들이 메우고 있다. 예식장 실장을 맡고 있는 아내 최씨는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사무 업무 등 온갖 잡일을 맡고 있다. 아들 백남문(42)씨는 아버지의 사진기를 들었다. 백남문 씨는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해 아버지의 방식으로 결혼식을 계속 올려드리고 싶다”며 “힘이 닿는 한 끝까지 예식장을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친척인 백태기 전 창원여중 교장은 백 대표의 마이크를 들고 주례를 대신한다. 백태기 씨는 “어르신이 투병 중이라 제가 봉사하고 있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무료로 결혼식을 할 수 있는 일을 도우니 보람차다”며 “어르신이 하루빨리 회복되길 바란다. 주변에서 예식장을 많이 걱정하시는데 힘들지만 가족들이 나서서 도우니 큰 무리 없이 운영되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친척 박영희 씨는 손님들이 입기 힘들어하는 드레스를 맡아 도움을 주고 있다.

1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신신예식장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 백낙삼씨를 대신해 결혼식 사진을 찍고 있는 아들 백남문씨가 단체촬영에 앞서 하객들의 위치를 잡아주고 있다./성승건 기자/
1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신신예식장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 백낙삼씨를 대신해 결혼식 사진을 찍고 있는 아들 백남문씨가 단체촬영에 앞서 하객들의 위치를 잡아주고 있다./성승건 기자/

이날 신신예식장에는 80대 노부부의 결혼식이 열렸다. 부부는 “텔레비전을 보고 일부러 이곳에서 결혼식으로 하고 싶어 서울에서 찾아왔다”며 “결혼식을 못해 아쉬웠는데 오늘 평생의 한을 풀었다. 기분이 정말 좋다”며 활짝 웃었다.

백 대표와 아내 최씨는 1967년부터 형편이 어려운 이들을 위해 무료 결혼식을 진행해왔다. 처음에는 사진관을 운영했지만 본인처럼 돈이 없어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고 애태우는 사람을 볼 때마다 마음에 걸렸고, 촬영비만 받고 결혼식을 무료로 해주자고 결심했다. 신신예식장은 완전 무료는 아니고 사진 촬영부터 메이크업, 드레스 준비 등 약 70여만원을 받고 있어 사실상 무료에 가깝다. 남는 것은 없지만 최씨는 백 대표가 돌아올 때를 기다리며 굳건히 신신예식장을 이끌어갈 계획이다.

백 대표는 무료 예식장을 운영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9년 제8기 국민추천포상 국민훈장 석류장과 지난해 LG의인상을 받았다. 또, 지난해 10월에는 tvN 예능 방송 ‘유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해 전국적으로 그의 선행이 알려졌다.

박준혁 기자 pjhnh@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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