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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다시 ‘못 박기·못 빼기’- 최진수(창원한들초등학교 교감)

기사입력 : 2022-08-07 20:42:43

해마다 반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늘 안 좋은 행동을 하는 아이가 있었다. 날마다 아이는 비뚤어져 갔다. 어느 날, 어머니는 아이에게 망치와 못을 주면서 말했다. ‘애야, 앞으로 안 좋은 일을 할 때마다 이 기둥에 못을 하나씩 박아라.’ 아이는 그게 재미있겠다 싶어 자랑이라도 하듯 못을 박았고, 얼마 뒤 기둥에 못이 가득 찼다. 아는 잘못도 저리 많은데 모르는 잘못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상처받았을까 싶어 어머니는 걱정 가득했다. 기둥에 못이 가득 박힌 어느 날, 아이는 기둥을 보며 지난 일들을 떠올리며 재미있던 일도 지나고 보니 별것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반성의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는 이번에는 착한 일을 할 때마다 기둥에 못을 하나씩 뽑으라고 했다. 얼마 되지 않아 기둥의 못을 다 빼고 아들은 기뻐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기둥에 남아 있는 못 자국들을 하나씩 하나씩 손으로 매만졌다.”

어느 책에서 뽑은 오래된 이야기다. 가만히 못을 생각하니 이제는 그런 못을 박을 기둥(나무 전봇대)이 보이지 않는다. 자꾸 박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으며 빼라는 이도, 못 자국을 매만지는 이도 거의 없다. 더구나 스스로 자기에게 못을 박는 이도 있어 안타깝다. 너무 크고 작은 못이 여러 곳에 박혀 잘 빠지지도 않아 품은 채 사는 이도 있다. 학교에는 이런 아픔을 지닌 교사와 아이들이 함께 지내며 산다. 선생님들 몸(마음)이 기둥이 되거나 아이들끼리 서로 기둥 삼아 박는 일도 있고, 박힌 못을 겨우겨우 뽑고 있는데 못 자국을 어루만져 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더 큰 못으로 박기도 해 안타까울 때도 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몇몇 사건이 문제가 되면서 풀어가는 노력의 속도보다 크고 작은 못을 박는 속도가 너무 빨라 아예 부러지거나 아예 회복할 수 없는 상처로 남기도 한다. 아물 한계를 넘지 않으려면 빠른 ‘관계 회복’을 위한 만남(대화)이 있어야 한다. 알고 박든 모르고 박든 못 뺄 기회와 시간이 모두에게 필요하다. 스스로 빼면서 남의 처지를 생각하고, 앞으로는 아예 못을 박지 않을 마음가짐을 배워야 한다. 그게 기본 예의(예절)이며, 삶에서 배워야 할 ‘앎’이다.

최진수(창원한들초등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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