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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피할 곳 없다] ②·끝 취약계층 실태

에어컨 있어도 무용지물… ‘폭염 피난민’ 된 노인들

기사입력 : 2022-08-08 21:58:00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무더운 날의 연속이다. 한낮에 걷고 있자니 태양이 숨을 곳 없게 맑게 갠 하늘을 탓하게 된다. 아스팔트에서 뿜어내는 열기가 계속해서 발목을 잡아 끌어내리고 하염없이 흐르는 땀은 썬크림을 발랐던 얼굴을 강제로 씻긴다. 마스크를 끼고 있으니 스스로의 열띤 숨결에 정신까지 혼미해진다.

지난 5일, 옛 마산 일대. 가지고 간 전자 온도계로 확인한 낮 최고 온도는 36℃를 넘겼다. 그늘이라도 있을까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저 멀리 담벼락 그늘에 기댄 작은 인영이 보인다. 몸집이 아주 작은 할머니가 쪼그려 앉아 있었다. 할머니, 덥지 않으세요?

낮 최고 기온이 30도를 웃돌며 무더운 날씨를 보인 8일 창원시 마산합포구의 한 주택에서 에어컨 없이 생활하는 노인이 더위를 피해 마당에 앉아 있다./김승권 기자/
낮 최고 기온이 30도를 웃돌며 무더운 날씨를 보인 8일 창원시 마산합포구의 한 주택에서 에어컨 없이 생활하는 노인이 더위를 피해 마당에 앉아 있다./김승권 기자/

◇노인에게 폭염은 ‘참아야 하는 것’이었다= 이모(90) 할머니는 기다리는 이 없이 그저 바깥 바람을 쐬고 싶다고 나와 있었다. 더우니 집 안에 들어가시라 하자 집 안이 답답하다고 하신다.

온도계를 들고 이 할머니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에는 선풍기 한 대가 돌아가고 있었다. 할머니의 집 안 온도는 35.2℃. 바깥 온도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할머니의 집 안 방 천장에 에어컨이 하나 보인다.

“주말에 손주 올 때나 틀지 나 혼자 뭐하러 틀꼬.”

이 할머니는 더워서 머리가 핑핑 돌 때도 에어컨은 켜지 않는다고 한다. 자식들이 가정을 꾸리고 남편을 떠나보내면서 이 할머니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추산동 달동네의 작은 집을 혼자 지키고 있다. 할머니는 ‘참을 수 있는 더위’라고 설명했다.

“이 정도면 선풍기로 충분하지. 죽을 날 얼마 안 남은 할미 혼자 에어컨 켤 필요가 없지. 쓸데없다. 에어컨 켜면 전기료도… 응. 참을 만하지.”

36℃가 넘어가는 더위에 높은 습도로 숨이 턱턱 막히건만 할머니는 ‘참을만 하다’고 누차 강조했다. 취재진이 1시간을 넘게 추산동 인근에 머무르는 동안 할머니는 여전히 집 바깥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마산회원구 회원2동에서 만난 송모(82) 할머니는 아흔이 넘은 남편과 살고 있다. 송 할머니의 집에는 에어컨이 없다. 부부는 수십 차례의 폭염을 오로지 낡은 선풍기 하나로 버텨냈다.

“더 더운 날도 있었는데… 이만하면 됐지. 너무 더우면 냉수 묵고 찬물로 세수도 하고. 그렇게 있으면 된다.”

송 할머니의 집 안 온도는 36.6℃로 바깥보다 더웠다. 그러나 매년 더위를 참아내고 있다.

회원동의 한 달동네에 거주하는 송 할머니가 오래된 선풍기로 더위를 식히고 있다.
회원동의 한 달동네에 거주하는 송 할머니가 오래된 선풍기로 더위를 식히고 있다.

◇무더위 쉼터 경로당 ‘멀고’, ‘불편해서’ 못가= “하이고, 살라고 왔다가 죽을뻔 했다.”

추산동의 한 경로당. 김모(80) 할머니가 문을 열더니 숨이 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주저 앉는다. 할머니는 가방에서 얼음물을 감싼 수건을 꺼내더니 땀으로 흠뻑 젖은 얼굴을 닦아냈다. 김 할머니는 지병 때문에 심한 발부종을 앓고 있다. 보조기구에 의지해 경로당까지 10분 정도를 걸어왔다.

폭염 기간에 지역 경로당들은 ‘무더위 쉼터’가 된다. 일반적으로 경로당의 운영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이 시간 경로당은 노인들이 찾아와 더위를 피할 수 있게 에어컨과 선풍기를 틀어 놓는다.

추산동 이 할머니와 회원2동 송 할머니의 집 인근에는 경로당이 있었다.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가지 못했다. 이 할머니는 얼마 전 목욕탕에서 넘어져 허리가 다친 뒤 걷는 것이 불편하다. 송 할머니 또한 무릎이 아파 높은 경사로를 오르기 힘들다. 경로당 노인들은 경로당에 오는 이들은 ‘정정한 편’이라고 얘기한다. 걷는 것에 문제가 없어야 경로당을 오고 더위를 해소할 수 있다.

회원동에서 만난 장모(84) 할아버지는 건강하다. 그는 매일 20분을 걸어 회원2동 한 마을 경로당으로 간다. 동네 주민들만 알 수 있는 지름길로 이리저리 걷다가 지치면 나무 그늘에서 잠시 쉬기도 한다. 할아버지의 집 가까이에도 경로당이 있지만 가지 않는다. 불편하다는 이유다.

“거기보다는 여기 경로당 사람들이 더 좋지. 아무래도 내가 다니던 교회 사람들이 여기 다 있기도 하고. 분위기도 참 좋아. 이왕 쉬는 거 편하게 있는 게 좋잖아.”

경로당은 더위를 해결하는 무더위 쉼터의 역할도 하지만 소소한 삶의 낙이 되기도 한다. 아침에 본 뉴스를 공유하며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장기를 두거나 함께 요가를 배우기도 한다. 그러나 누군가에겐 어색하고 불편한 공간이기도 하다.

회원2동의 한 마을 경로회장은 “경로당 자체가 노인들만 온다는 생각이 있어서 젊은 사람들(60대~70대 초)은 잘 안 온다. 또 사람이 사는 곳이니 개인적인 감정 싸움이 있었다면 못 오기도 하고 성격이 내성적이어서 안 오기도 한다”며 “다양한 이유로 오지 않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점심시간대 신포동의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노인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점심시간대 신포동의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노인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더위 피하려 이곳저곳… 폭염 피난민이 있었다= 경로당은 누구나 올 수 있지만 누구나 올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경로당을 가지 않는 노인들은 폭염 피난을 떠난다.

6일 마산합포구 창포동의 한 대형마트. 오픈시각인 10시 전부터 정문과 후문 인근에 사람들이 머물러 있다. 문이 열리자 인파가 마트로 들어선다. 아침부터 마트를 찾은 사람들의 목적은 다양하다. 게임을 하러 온 아이들, 장을 보러 온 사람, 공병을 가지러 온 노인 등. 그러나 개중에는 목적이 없는 이들도 있었다.

한 할아버지는 마트로 들어선 뒤 신선제품코너로 내려갔다. 10분 넘게 걸어 다녔지만 손에 들린 것은 없었다. 할아버지는 다시 나와 1층으로 올라갔다. 게임기가 설치된 공간 뒤편 작은 벤치에 몸을 기댔다. 아이들이 소란스럽게 게임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30분 가까이 그렇게 앉아 있었다.

식사를 할 수 있게 테이블이 구비된 편의점도 쉴 수 있는 공간이 된다. 회원2동의 한 편의점에서 오후 파트 아르바이트를 하는 정모(43) 씨는 “점심시간대와 오후시간대 특히 어르신들이 많이 찾으신다”며 “김밥이나 우유 하나를 사서 한 시간 가까이 앉아 계시다가 가신다”고 얘기했다.

노인들에게 그저 시원하고 쾌적한 환경에 앉을 곳이 있다면, 그곳이 바로 무더위 쉼터다. 그러나 이곳에서 마냥 편한 휴식을 취할 순 없다. 정씨는 안타까운 한숨을 내쉰다.

“더 쉬셔도 되는데. 손님이 없으면 쉬고 계시는데, 손님이 많은 시간대에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가시고 없더라구요. 아무래도 눈치가 보이시는 거겠죠.”

추산동의 한 공원에 설치된 야외 무더위 쉼터인 팔각정./어태희 기자/
추산동의 한 공원에 설치된 야외 무더위 쉼터인 팔각정./어태희 기자/

경로당 이외에도 노인들이 더위를 피할 수 있는 대체 공간들이 무더위 쉼터로 지정되긴 하지만 아직 경남에는 없다. 경로당이 아닌 쉼터는 공원에 설치된 팔각정뿐이다. 기온뿐만 아니라 습도까지 높은 날씨에 팔각정의 그늘은 더위를 해소해 주지 못한다. 취재진이 직접 찾은 야외 무더위 쉼터 중 노인이 이용하고 있는 시설은 없었다. 그렇게 노인들은 피난을 나선다. 마트로, 편의점으로, 은행으로, 패스트푸드점으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어태희 기자 ttott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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