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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범죄와의 전쟁 ⑫ 디지털 성범죄- 모니터링 현장

여성긴급전화1366경남센터 디지털성범죄 전담팀 만나보니

삭제하고 차단해도… 불법영상은 끝도 없이 생겨났다

기사입력 : 2022-08-10 21:36:37

모니터 안, 여성이 바닥에 아무렇게 방치돼 누워 있다. 벌거벗은 모습이다.

여성긴급전화1366경남센터의 디지털성범죄 전담팀 명소현 상담원은 이 영상을 몇 번씩 되감는다. 취재진은 영상이 재생되는 내내 인상을 찌푸리고 눈을 감았지만 명 상담원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영상을 분석한다.

“일단 연출된 영상은 아닌 걸로 보입니다. 영상 내내 여성은 코를 골 정도로 깊이 잠들어 있고요. 여기 사용된 술병에 적힌 게 한자라서 우리나라가 아니라고 생각 할 수 있겠지만… 이렇게 이 술병을 돌리는 장면을 멈춰보면 한글이 보이죠? 우리나라에서 불법 촬영된 영상일 수 있습니다.”

여성긴급전화1366경남센터의 디지털성범죄 전담팀이 온라인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다.
여성긴급전화1366경남센터의 디지털성범죄 전담팀이 온라인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다.


인터넷 뒤져 불법촬영 정황 찾아
잔혹하고 충격적 영상 계속 나와
아이 사진에 성착취 문구 버젓이


◇범람하는 디지털성범죄, 그 현장은= 박수연, 명소현 상담원은 디지털성범죄 전담 상담사들이다. 이들은 디지털성범죄 관련 상담과 수사와 법률지원부터 내담자의 요청에 따라 유포현황을 모니터링하고 삭제를 지원한다. 뿐만 아니라 의뢰받은 상담일이 아니더라도 틈틈이 인터넷에 퍼져있는 불법촬영 영상물을 찾기도 한다.

한국에서 찍힌 불법 촬영된 영상이라면 누구든 삭제 지원이 가능하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불법·유해정보 신고’를 이용해 △영상 캡처 사진 △사이트의 URL △불법촬영 사항을 기록하면 영상이 삭제되거나 사이트가 차단된다.

두 상담원은 직접 모니터링 작업을 보여줬다. 포털 사이트를 켜 디지털성범죄와 관련된 키워드를 검색한다. 곧이어 키워드와 연관된 수백 개의 영상물이 올라온다. 영상 하나하나를 클릭해 돌려보며 한국에서 찍혔거나 불법 촬영된 정황을 찾는다.

불법적인 영상은 다양하고 많다. 남녀의 사적인 관계를 불법 촬영한 영상, 연예인의 얼굴을 합성해 만든 사진과 영상, 탈의실과 화장실 등에 설치형 카메라를 두고 여러 명의 피해자를 촬영한 영상까지도 그 무엇도 가볍게 치부할 수 없는 엄연한 성범죄였다.

20분도 지나지 않아 두 상담원은 10개가 넘는 영상물을 삭제 요청했다. 모두 불법 촬영된 정황을 발견한 영상이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명소현 상담원은 모니터를 응시하더니 한숨을 쉬었다. 모니터에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 아이들이 밝은 표정으로 찍은 셀카 사진이 있었다. 어느 익명의 SNS 계정에서다. 그리고 사진 밑에는 아동성착취물을 판매한다는 문구가 해시태그(#)로 정리돼 있었다. 그가 가진 것만 400여개가 넘는다고 한다. 게시글엔 수많은 사람들이 ‘Like(좋아요)’를 눌러놨다.

“끝도 없어요. 잔혹하고 충격적인 영상물에 덤덤해질 때, 또 다시 더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영상물이 나오고. 삭제하고 삭제해도 이곳저곳에서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어요. 피해자들의 악몽이 증식하는 것 같습니다. 몇 년을 이 현장에 있어도 두려움에 떨고 또 분노하게 됩니다.”


2018년 84건이던 상담 건수 급증
2021년엔 전년 10배인 1500여건

도내 전담팀 단2명뿐 인력 부족
수사기관 내 전문대응팀 절실
아동~성인 전 연령 맞춤교육해야


◇점점 잔혹해지는 디지털성범죄, 제동해야 할 때= 여성긴급전화1366경남센터가 진행한 디지털성범죄 상담 수는 최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2018년 84개였던 상담수가 2019년에 110건, 2020년에 140건으로 점차 오르더니 2021년에는 1510건으로 전년 대비 10배 이상 늘어났다. 올해도 6월까지 834건의 상담을 진행했다.

‘n번방’ 사건이 알려진 이후 경남도 또한 디지털성범죄의 심각성을 인지, 2020년 7월에 1366경남센터 산하 디지털성범죄 사이버감시단을 운영했지만 지난해 12월 활동이 종료됐다. 성과에도 불구하고 여가부에서 진행하는 지역별 디지털성범죄 전담팀(여성긴급전화 1366)과 사업 내용이 겹친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 기간 사이버감시단이 처리한 디지털성범죄 영상물은 10만건에 이른다.

이제는 디지털성범죄를 사회의 문제라고 분명히 인식하고 제동을 걸어야 할 때다. 수년간 디지털성범죄를 다뤄온 상담사들은 교육, 행정, 사법 모든 방면에서 노력이 필요하다고 얘기한다.

피해지원 전문인력의 충원과 양성을 위한 예산 증액은 절실하다. 디지털 성범죄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지만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을 지원해주는 인력은 한없이 부족하다.

명 상담원과 박 상담원은 경남에서 단 두 명 밖에 없는 디지털 성범죄 전담팀이다. 두 명이 경남의 수많은 피해 사례들을 관리하고 모니터링하고 있는 실정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이다. 박 상담원은 “생애주기별 맞춤형 디지털 성범죄 예방 교육을 실시해 디지털성범죄가 다른 범죄 이상으로 심각하고 엄중한 범죄라는 것을 인식시켜야 한다”며 “도덕과 윤리가 형성되는 어린 시기에서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이 필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글·사진= 어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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