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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소멸 극복 프로젝트- 경남신문 심부름센터] (5) 손잡고 나가자 서로 정답게

방학 때도 등교하는 ‘작은학교’엔 아이들 웃음 넘치는데…

기사입력 : 2022-08-15 21:04:37

‘아-악! 아-악!/고라니처럼 시끄러운 내 친구’

지난 11일 찾은 의령군 궁류면 궁류초등학교 6학년 교실 안 ‘함께하는 우리’ 게시판에 걸려있는 시(詩) ‘친구’ 중 한 대목입니다. 6학년 남예슬 양이 썼습니다. 똑같은 제목의 다른 시도 바로 옆에 걸려있군요.

‘노루처럼 시끄러운 친구 (중략) 먹을 냄새만 맡으면 환장하는 친구’

6학년 신광재 군의 시 중 일부입니다. 이 둘은 궁류초등학교의 최고 학년인 동갑내기이자 유치원 입학 이전부터 알고 지낸 10년지기이기도 합니다.

의령 궁류초 신광재(왼쪽부터), 전종인, 이길호, 남예슬 학생이 여름방학 방과후 학교와 돌봄교실을 마친 후 손을 잡고 교정을 달리고 있다.
의령 궁류초 신광재(왼쪽부터), 전종인, 이길호, 남예슬 학생이 여름방학 방과후 학교와 돌봄교실을 마친 후 손을 잡고 교정을 달리고 있다.

◇마기꾼들이 마주한 작은학교… “학교에 오는 게 즐거워요”= 이날 경남신문 심부름센터 마기꾼들(마을기록꾼들)은 마을 밖으로 벗어나 궁류면 입사마을의 최연소 주민인 광재가 다니고 있는 궁류초등학교를 찾았습니다. 의령 궁류초등학교는 ‘찐친’ 6학년 광재와 예슬이를 비롯해 3학년 이길호·전종인·김형율 군, 1학년 손윤재 군까지 6명이 전부인 ‘작은학교’입니다.

의령 궁류초등학교 전경.
의령 궁류초등학교 전경.
전교생이 6명인 의령 궁류초 학생 신발장에 여섯 켤레의 신발이 놓여 있다.
전교생이 6명인 의령 궁류초 학생 신발장에 여섯 켤레의 신발이 놓여 있다.

궁류초등학교는 여름방학이 ‘있었지만 없었습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지난달 22일부터 방학에 들어갔지만, 학교는 특별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누리교실과 방과후교실을 운영하면서 실제 방학은 없는 셈인 겁니다. 일이 바쁜데다 학원이 없어 방학 중에도 아이들을 신경쓰기 쉽지 않은 시골학교 학부모들의 돌봄 부담을 작은학교가 덜어주는 거죠. 방학 중에도 아이들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노란색 통학버스를 타고 학교와 집을 오갑니다. 광재도 마찬가지. 오전 8시 40분이면 학교에서 5㎞ 떨어진 입사마을로 광재를 태우기 위해 버스가 오고, 오후 4시 반이면 다시 마을로 출발합니다. 걸어서 등하교를 할 수 없는 거리라 학교에서 통학버스를 운영하고 있는 겁니다.

4, 6학년 교실에 책상 두 개가 놓여 있다.
4, 6학년 교실에 책상 두 개가 놓여 있다.
학생들이 영어회화 수업을 하고 있다.
학생들이 영어회화 수업을 하고 있다.

마기꾼들이 찾은 목요일 오전. 이날은 광재, 예슬이, 길호, 종인이가 등교했습니다. 학기 때와 똑같이 수업 시간과 쉬는 시간, 점심 시간 때마다 종이 울렸는데요. 오전에는 4명이 함께 영어 회화 수업을 듣습니다. ‘walking through the jungle’ 영상을 신나게 감상하며 듣기와 말하기 수업이 한참 이어지고, 헷갈리는 영어 단어인 ‘desert(사막)’와 ‘dessert(후식)’의 뜻과 발음, 강세 차이도 배우는 시간이 이어지는군요. 곧이어 3학년과 6학년이 나뉘어져 수준별 수업이 진행되기도 합니다.

“아이들 표정이 되게 밝죠? 집에 가면 마을에 친구가 없어서 집 밖으로 나가지도 않고 심심해하는데 학교에 오면 또래들이 있으니까 공부도 즐겁고 노는 것도 신나는 거죠. 방학기간 3일 학교를 쉬었는데 그걸 못참고 학교로 오고 싶다고 난리였어요.” 윤정미 교장 선생님의 표정도 아이들의 표정과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블럭 만들기를 하고 있는 아이들.
블럭 만들기를 하고 있는 아이들.

◇마기꾼들의 손목에 차례로 생긴 ‘과속방지턱’… “얘들아, ‘반모’는 무슨 뜻이야?”= 돈가스 도시락으로 맛있는 점심을 먹은 친구들. 이어서 오후 3시까지 방과후교실 미술수업을 마치고선 마기꾼들과도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저희를 처음 만난 오전만 해도 아이들은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는데, 쉬는 시간마다 틈틈이 이야기를 나누며 어느새 저와 김승권 사진꾼, 이솔희 영상꾼은 아저씨, 대학생인 이아름 영상꾼은 누나로 불릴 만큼 친해졌습니다.

빼놓을 수 없는 게 게임이죠? 이날 궁류초등학교 ‘어벤져스’ 4명과 마기꾼 4명은 돌봄교실에서 손에 땀을 쥐는 젠가 대결도 펼쳤습니다. 탑을 무너뜨리는 사람이 손목을 맞기로 했는데요. 손쉬운 승리를 예상했던 마기꾼들. 결과는 ‘참패’였습니다. 과감하면서도 침착한 플레이를 펼친 광재·예슬 듀오 앞에서 번번이 탑을 무너뜨리고 손목을 내밀어야만 했는데요. 예슬이의 강력한 스매싱이 마기꾼들의 손목을 강타합니다. ‘이게 과연 초등학교 6학년의 힘인가’ 놀라는 것도 잠시!

“아저씨! 손목에 과속방지턱 생겼어요.”

까르르하며 좋아하는 아이들의 시선이 머문 곳은 마기꾼들의 손목이었는데요. 아이들의 말처럼 정말 손목 가운데가 솟아서 불룩하게 언덕이 졌습니다. 봐주지 않고 진심을 다해 게임을 한 마기꾼들, 패배를 설욕할 날이 다시 올까요?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이 친구들 영락없는 초등학생이구나’ 느끼는 순간도 있었는데요. 거의 모든 문장에 줄임말을 섞어 쓸 때였습니다. ‘얘들 정말 ‘별다줄’(별걸 다 줄인다)’ 속으로 생각하던 그 순간. 예슬이가 말했습니다.

“이제부터 ‘반모’!”

“반모가 뭐야?”

“아저씨 그것도 몰라요?”

“아저씨니까 모르지. 무슨 뜻이야? 두부 반모?”

“반말모드요.”

“아….”

그렇게 한동안 ‘반모’가 이어지며 손목에 ‘과방턱’도 하나 더 새겨질 무렵. 오랜만에(?) 동심으로 돌아간 마기꾼들의 마음을 더욱 따뜻하게 해준 건 진심이 듬뿍 묻어난 광재와 예슬이의 한 마디였습니다.

“아! 6년 만에 최고로 많이 웃은 날이에요.”

학생들과 취재진이 돌봄교실에서 젠가 게임을 하고 있다.
팔씨름을 하고 있는 6학년 신광재군과 이솔희 VJ.
팔씨름을 하고 있는 6학년 신광재군과 이솔희 VJ.
학생들과 취재진이 돌봄교실에서 젠가 게임을 하고 있다.

◇이 웃음이 끊이지 않게 해주세요

광재와 예슬이는 초등학교 마지막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습니다. 내년이면 의령중학교와 의령여자중학교로 진학하게 되고, 궁류초등학교는 전교생 2명이 줄어들게 됩니다.

지역소멸 위기지역인 의령, 그중에서도 가장 소멸 위험이 높은 궁류면은 ‘학교 소멸 위기’ 앞에도 직면해있습니다. 학생수가 적다 보니 2학급(1·3학년, 6학년), 교원 정원도 3명(학교장 1명·교사 2명)에 불과한데 내년이면 1학급만 남을지도 모릅니다. 병설 유치원은 입학할 아이가 없어 올해부터 폐원한 상태인데요. 올해 궁류면에서 태어난 아기는 단 1명이고, 이대로라면 내년부터 최소 4년간 궁류초등학교 입학생은 ‘0명’입니다. 40년 전인 1992년 졸업생이 처음 100명이 무너진 이후 해마다 학생수가 줄어든 겁니다. 궁류초등학교는 의령 내 유곡초등학교, 정곡초등학교, 지정초등학교가 있는 지역과 비교했을 때 지리적으로 어느 쪽에서도 이동 거리가 멀고 높은 고개를 넘어야 해 위험하고 접근성이 떨어집니다. 이런 이유들도 소멸의 속도를 더욱 빠르게 하는 이유인 겁니다.

궁류초등학교는 그러나 사라지면 안 될 이유들이 넘쳐나는 매력적인 학교이기도 합니다. 광재가 ‘학교가 좋은 첫 번째 이유’로 꼽을 만큼 정원이 잘 조성돼 있고요, 실내체육관과 최첨단 교육환경도 잘 갖춰져 있습니다. 다 소화하기에 시간이 부족할 만큼 많은 다양한 체험학습은 물론 전액 무료로 운영되는 돌봄교실과 AI교실, 미술교실, 피아노교실, 다도수업 등 다채로운 방과후학교, 입학(40만원), 전입(40만원), 졸업(70만원) 장학금을 비롯해 학교를 지키고 싶은 이들이 조성한 다양한 장학금도 장점입니다. 학교가 사라지면 모두 함께 사라질 혜택들이겠지요. 무엇보다 졸업생들이기도 한 궁류면 주민들의 추억도, 아이들의 웃음도 끊어질 것이기에 없어져선 안 될 학교입니다. 작은학교가 살아나면 궁류면도, 의령군도, 더 넓게는 경남도 살아날 수 있지 않을까요? 학교구성원과 지자체, 교육당국은 물론 경남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작은학교로 향하기를, 그리하여 이곳으로 전입하는 가구도 늘어나기를 바랍니다.

마기꾼들과의 ‘일일 방과후교실’을 마친 궁류초등학교 어벤져스들은 다 같이 손잡고 학교 정원으로 뛰어갑니다. 서로 정답게 말이죠. 몇년, 몇십년이 지나도 이런 해맑은 웃음이 끊이지 않는 학교로 이어가는 것, 우리 어른들의 몫일 겁니다. 궁류초등학교 6학년 교실 안 ‘함께하는 우리’ 게시판에 걸려있는 예슬이와 광재의 시 ‘친구’는 각각 이렇게 끝납니다.

‘샤랄라 천사처럼 다정한 친구’,

‘잘 웃는 친구, 좋은 친구’.

글= 도영진 기자·사진= 김승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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