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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간호사는 죽어가도, 환자는 살린다 - 박형숙 (경남간호사회 회장)

기사입력 : 2022-08-17 21:22:32

학생 때, 강의를 하시다가 느닷없이 내과 간호학 교수님께서 “여러분들 만약에 병실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어떻게 할래?”라고 질문하면 학생들은 “예~~ 당연히 환자부터 먼저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켜야지요”라고 답했다. 이것이 정답이다.

졸업 후 40여년간 교수생활을 하면서 나 또한 배운 그대로 제자들에게 “만약에 수술실에서, 중환자실에서, 응급실에서 불이 나면 학생 여러분! 어쩔 건데요” 하고 문제를 던지면 제자들은 곧바로 일제히 정답을 말한다. “환자 먼저요!”

간호사는 20대 초반에 서약한 나이팅게일의 정신을 간호 현장이 어느 곳이든 실천할 것을 각 교과목의 교강사들로부터 4년 내내 정신무장 교육을 받고 졸업한다.

지난 8월 5일 경기도 이천병원에서 발생한 화재사건으로 고령환자 4명과 간호사 1명이 사망했다. 하필 그 병원은 투석 전문병원이어서 투석 환자들은 기동성이 매우 낮다. 화재발생 당시 병동의 정확한 정황을 뉴스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렵지만, 짐작은 할 수 있다. 최소한 투석을 받을 때 환자의 전혈-요독과 노폐물 제거를 위해 약 4시간가량 걸린다. 이때 간호사는 투석실을 4시간 동안 꼬박 환자 곁을 지키면서 15분마다 환자의 활력 징후-혈압, 체온, 맥박수 및 호흡수를 모니터링한다. 환자의 혈액량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투석기계 안에 남은 혈액을 모두 주입시킨 후 투석을 종료하려면 통상적으로 약 15분가량 시간이 소요된다. 그런데 이번에 투석 중에 화재가 발생해 근무 간호사들은 환자들을 대피시키려고 했을 것이다.

이 찰나, 차마 투석기에 묶여서 거동의 자유가 없는 환자들을 외면할 수 없었던 50살의 젊고 건강한 고 현은경 간호사는 자신의 죽음이 다가옴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키려고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화재 발생 장소인 3층서부터 차올라 오는 연기가 병실인 4층까지 자욱했으나 현 간호사에게 대피할 시간이 충분히 있었겠지만 끝까지 환자 곁을 지켰을 것이라는 경기도 관할 소방서의 판단이다.

20년 실무 경력 가운데 이천병원 근무가 15년인 만큼 현 간호사는 어느 누구보다도 투석 전문가였을 것이다. 1남 1녀의 자녀, 남편, 8순 잔치를 하루 앞둔 아버님과 어머님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아주 의연하게 환자 곁을 지키다 간호사로서의 사명을 완수하고 몸과 정신은 이 세상을 하직하고 영과 혼은 저 광활한 우주로 날아갔을 것이다.

다른 간호사들도 연기가 끊임없이 차오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의 이동을 도우려고 환자들의 팔목에 연결된 투석관을 가위로 자른 뒤 대피 시켰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새삼, 유난히 뜨겁고 무더운 여름날에 〈간호사는 죽어도 환자는 살린다〉는 간호 학도의 좌우명, 화두를 되새겨본다.

박형숙 (경남간호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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