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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함께’ 키우는 ‘같이’의 가치- 임채성(시조시인)

기사입력 : 2022-09-01 19:41:52
임채성 시조시인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개인과 개인이 상호작용을 통해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라는 뜻이다. 따라서 인간은 어울림의 공동체를 이룰 때 그 존재 의미나 가치가 더욱 빛이 난다.

사람을 뜻하는 한자 인(人)이 서로 기대어 완전체를 이루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처럼 인간은 공존과 공생을 추구하며 더불어 살아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먼 옛날부터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공생의식은 사회적 공동체를 낳게 만들었고, 사나운 짐승과 가혹한 자연에 맞설 수 있는 힘과 지혜의 원천이 됐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깨달음도 여기서 얻었으리라.

인간의 삶을 생물학적으로 구조화하면 ‘탄생-성장-노화-죽음’에 불과하지만, 관계와 관계가 중첩돼 공동체로 확장되는 순간 인간의 삶은 역사가 되고 문화가 된다. 개인의 삶은 죽음으로 끝나지만 공동체적 삶은 얼마든지 지속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개인의 유·무형 기억이 공동체를 통해 보존되고 전승됨으로써 문화유산으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공동체를 통한 지속가능성의 담보는 사람이 다른 종과 구별되는 사회적 동물의 징표이다.

그런데 지금의 대한민국은 공동체적 가치와 인식이 퇴보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자기중심적 사고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아무리 얽히고설켜 있다 하더라도 대화와 타협, 존중과 이해를 통한 상생의 도(道)를 찾기보다 어떻게든 상대를 깎아내리고 또한 밟고 일어서려 한다.

총소리만 없는 전쟁터가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정치계든, 경제계든, 노동계든, 학계든, 어디든 간에 나 아닌 모든 존재를 적으로 간주하며 배척의 차원을 넘어 극단적인 살처분의 의도를 천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남북으로 갈라진 것도 모자라 동과 서로 진영을 나누고, 보수와 진보, 남성과 여성, 장애인과 비장애인,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극단적인 편 가르기를 하고 있다.

무엇이 가장 공익적이고, 무엇이 가장 합리적인 것인지에 대한 토론이나 검증 없이 자신의 주장만을 관철시키려고 핏대를 세운다.

이러한 갈등과 대립은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피로 누적과 경기침체가 겹쳐지면서 더욱 심화됐다. 무한경쟁 사회에 내던져진 사람들의 치열한 생존 투쟁을 반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이들 싸움의 배경에는 나만 생각하는 이기주의가 자리 잡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콩 한 쪽도 나눠 먹으며 모두 함께 더불어 잘살자는 것이 아니라 나만 잘 먹고 잘살자는 에고이즘의 표출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내 편, 네 편을 가르는 이분법적 흑백논리는 결국 공멸로 이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차려야 한다. 세상에는 양자택일의 해법만이 아닌 제3, 제4의 대안도 존재할 수 있다. 파멸을 향해 마주 보고 달려가는 폭주기관차를 멈춰 세울 상생의 도는 대화와 타협, 양보와 이해라는 기본적인 상호 존중의 자세에서 출발한다. 내가 중요한 만큼 남도 중요하다는 공동체적 인식과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공생의식이 못내 아쉬운 계절이다.

임채성(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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