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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945) 불식지무(不識之無)

- 쉬운 ‘지(之)’자나 ‘무(無)’자도 알지 못 한다

기사입력 : 2022-09-06 07:53:12
동방한학연구원장

지난 8월 20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불편을 드려 다시 한번 심심한 사과를 드립니다’라는 사과문을 트위터에 게재했다.

이 사과문을 본 누리꾼들이 다투어 항의하는 댓글을 달았다. “심심한 사과? 나는 이것 때문에 더 화나는데”, “‘심심한 사과?’ 난 하나도 안 심심한데” 등등이었다.

댓글을 단 사람들은 ‘심심’한 사과의 ‘심심’이, ‘할 일이 없어 지루하다’의 뜻으로 잘못 이해할 뿐, 원래 ‘매우 깊다’의 뜻인 ‘심심(甚深)인 줄은 몰랐다.

‘심심(甚深)은 자주 쓰이던 말로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여기서 젊은 세대들의 우리말 독해 수준이 급격히 떨어졌다는 것을 증명한다.

우리 글의 가장 큰 문제점은 뜻을 모르면서도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현재 우리나라에서 한글을 못 읽는 통계상의 문맹률은 1%이지만, 문장 이해가 안 되는 실질적 문맹률은 75%에까지 이른다. 한자는 자기가 모르면 절대 읽을 수 없다.

그래서 최근 우리말의 많은 단어들이 급격히 사어(死語)가 돼버려졌다고 한다.

통계에 의하면 한국의 일반 사회인들이 일상생활하는 데 필요한 단어가 약 4500개 정도였는데, 20년 만에 약 1700개 단어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젊은 세대의 사람들은 자기가 모르는 단어를 들으면 “쉬운 우리말을 쓰지, 왜 어려운 말을 씁니까?”라고 불만을 표시하며 자신의 무지를 도리어 변호하려고 한다.

서울의 어떤 회사에서 사원을 뽑으면서 괄호 속에 ‘중국어 가능자 우대’라는 조건을 걸었다. 합격한 두 사람은 모두 중국 유학생이었다. 한국 젊은이들의 우리말 수준이 중국어 학생에게도 못 미치는 것이다.

중국 유학생들이 ‘한국어 단어는 한자를 알면 거저 알겠구나’하는 원리를 터득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꼭 한자로 표기 안 하고 한글로 표기해도 다 안다.

‘한자 한문이 어렵다’라는 핑계로, 학생들에게 교육을 안 한다. 우리말은 75% 이상이 한자에서 유래된 단어다.

학술용어 등은 거의 99% 한자로 된 단어다. 한자, 한문을 안 배우면 안 되는 문화를 가진 나라인데, 학생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 우리 글자가 아니라고 해서 교육하지 않고 있다. 학생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을 바보로 만들어 평생 괴롭게 만들고 있다.

한자 용어로 가득 찬 의학이나 법률관계 서적이 요즈음 한글로만 돼 있다. 완전히 암호다. 학생들은 하나하나 다 외워야 하니, 그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뜻이 모호해지자 괄호 속에 전부 영어를 집어넣어 놓았다.

당(唐)나라의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태어난 지 7개월 만에 갈 ‘지(之)’자와 없을 ‘무(無)’자를 알았다. 백거이가 7개월 때 알았던 쉬운 두 글자도 모른다는 뜻에서 이 단어는 ‘글자를 모른다’, ‘무식하다’ 등의 뜻이 된다.

* 不 : 아니 불 * 識 : 알 식

* 之 : 갈 지 * 無 : 없을 무

동방한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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