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도시 표정 밝히는 공공미술] (2) 도시가 미술관

예술옷 입은 마을과 섬, 공공미술서 새로운 길을 찾다

기사입력 : 2022-11-15 21:02:55

도시 곳곳에서 마주할 수 있는 공공미술의 형태는 다양하다. 주민의 일상에 잘 스며든 공공미술은 도시에 새뜻한 활력을 불어넣는다. ‘도시 표정 밝히는 공공미술’ 두 번째 기획에서는 피란민이 거주하던 달동네에서 공공미술과 함께 한 해 300만명가량의 관광객이 찾는 명소로 거듭난 부산 감천문화마을과 공공미술의 새로운 시도로 각광받은 제주의 ‘우도9경’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부산 감천문화마을 골목에서 마주할 수 있는 작품들./한유진 기자/
부산 감천문화마을 골목에서 마주할 수 있는 작품들./한유진 기자/

◇부산 감천문화마을= 부산 감천문화마을은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히고 있다. 부산역전 대화재로 인해 부산 중구 보수동에 거주하던 태극도 신도와 피란민 4000여명이 1955년 감천동으로 집단 이주하면서 천마산과 옥녀봉 사이의 산비탈면에 10평이 채 못 되는 판잣집 1000여동을 지어 거주하면서 마을이 형성됐다. 마을로 이주한 사람들은 ‘모든 길이 통해야 한다. 앞집이 뒷집을 가려서는 안 된다’는 두 가지 원칙에 따라 길을 내고 집을 지었다. 이러한 원칙을 통해 건축된 집들은 산자락을 따라 계단식으로 질서정연하게 자리 잡게 됐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초창기 판잣집은 시멘트 블록과 콘크리트 집으로 차츰 바뀌게 됐다.

부산 감천문화마을 골목에서 마주할 수 있는 작품들./한유진 기자/
부산 감천문화마을 골목에서 마주할 수 있는 작품들./한유진 기자/
부산 감천문화마을 골목에서 마주할 수 있는 작품들./한유진 기자/
부산 감천문화마을 골목에서 마주할 수 있는 작품들./한유진 기자/

산업화 이후 젊은이들이 떠난 마을은 인구가 급격히 감소해 빈집이 늘어갔고 점점 활력을 잃어갔다. 그렇게 부산의 낙후된 달동네 중 하나였던 감천마을은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의 마을미술프로젝트 공모에 선정되면서 10점의 예술작품이 마을에 들어섰다. 감천마을이 감천‘문화’마을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 첫 출발점이었다. 이후 예술가들은 주민들과 협력해 ‘미로미로골목길 프로젝트’, ‘마추픽추 골목길 프로젝트’, ‘별보러가는 계단 공공미술 프로젝트’ 등 10여년간 다양한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실현해 나가면서 감천마을 골목골목에는 예술이 스며들었다.

부산 감천문화마을 골목에서 마주할 수 있는 작품들./한유진 기자/
부산 감천문화마을 골목에서 마주할 수 있는 작품들./한유진 기자/
부산 감천문화마을 골목에서 마주할 수 있는 작품들./한유진 기자/
부산 감천문화마을 골목에서 마주할 수 있는 작품들./한유진 기자/

산비탈을 따라 계단식으로 들어선 파스텔 톤 색채의 마을 전경과 함께 마을 전체에 스민 예술의 향기에 감천마을은 어느덧 낙후된 마을에서 세계가 주목하는 문화마을로 부상했다. 2019년에는 한 해 관광객 수 300만명을 돌파할 정도로 감천문화마을은 명실상부 부산을 대표하는 관광 명소가 됐다. 아름다운 자연과 어우러진 그림 같은 마을 풍경을 눈에 담고서 마을 골목 곳곳에 설치된 다양한 형태의 예술작품을 찾아다니며 감상하는 즐거움이 그곳에 있었다.

“주말, 평일을 불문하고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와요. 코로나19 이전에는 사람들이 더 많았어요. 원주민들은 대부분 고령층이 많아요. 문화 사업이 진행되기 전에는 마을에서 젊은 사람들을 보기가 힘들었는데 젊은이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마을을 많이 찾아오니까 원주민들 입장에서는 신비롭죠. 신기하기도 하고 마을에 활력도 넘치고요. 관광지화에 따른 불편한 점도 분명 있겠지만 외적으로는 그렇습니다.”

마을 초입에서는 박은생, 박경석 작가의 작품인 ‘이야기가 있는 집’을 만날 수 있다. 질서정연하게 밀집돼 있으면서 다양한 색상을 펼치는 감천동의 주거형태를 상승하는 집들의 모양으로 구성해 변화하고 발전하는 감천의 이미지로 형상화했다.

부산 감천문화마을 골목에서 마주할 수 있는 작품들./한유진 기자/
부산 감천문화마을 골목에서 마주할 수 있는 작품들./한유진 기자/

전미경 작가의 ‘감천아리랑’은 감천마을을 함축하는 대표적인 이미지를 벽화로 섬세하게 표현해 관광객들로 하여금 신선한 시각적 체험을 제공한다. 신무경 작가의 ‘달콤한 민들레의 속삭임’은 민들레의 홀씨가 바람에 날려 다른 곳에서 꽃을 피우듯 주민들의 희망 메시지가 마을 안에서 혹은 마을을 떠나서라도 꼭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품을 설치했다. 전영진 작가는 ‘사람 그리고 새’라는 작품을 통해 누구나 한 번쯤 하늘을 날고 싶다는 상상을 표현했다. 또 진영섭 작가의 ‘골목을 누비는 물고기’ 작품은 감천마을의 좁은 골목길 주민들의 소통의 통로이자 어머니의 빨래터이며 가족의 앞마당인 일상적 공간에 물고기들의 자유로움 움직임으로 생기 넘치는 생활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걷다 보면 관광객들이 줄 서서 사진을 남기는 어린 왕자와 사막여우 형태의 조형물을 비롯해 수십여점의 작품들을 마을 안에서 마주할 수 있다. 한편 관광지로 변한 마을의 장점과 단점 사이의 간극을 줄이고 원주민들이 보다 쾌적하게 살 수 있는 동네를 위해 주민들은 ‘감천문화마을 주민협의회’를 구성하고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마을 발전을 위한 주도적인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공동체 수익사업을 통해 주민들의 일자리와 매출을 창출하고 수익금은 마을 발전과 주민들을 위한 지역환원사업으로 사용된다. 주민들은 문화 마을로서의 지속성을 갖기 위해서는 일회성 관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심이 중요하다고 꼽았다.

김경열 감천문화마을 주민협의회장은 “관과 예술가, 주민들이 함께한 공공미술 프로젝트라든지 이런 사업들이 이어져서 마을이 한 단계 한 단계 발전해갔다. 무엇보다 이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보다 쾌적하게 예술적 가치를 체감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관과 주민, 주민과 예술가 간 상호 소통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제주 ‘우도9경’ 공공미술 프로젝트= 섬 속의 섬 우도. 제주 성산포에서 3.8㎞ 떨어져 있는 이곳은 배로 10분이면 닿을 수 있는 섬이다. 한 해 200만명의 관광객이 찾았을 정도로 천혜의 자연 풍경을 지닌 우도에서 지난 2020년부터 2021년까지 약 4개월간 예술과 주민을 잇는 신선한 공공미술이 마을을 이채롭게 되비췄다.

바로 아름답기로 유명한 우도8경에 더해 예술가와 주민이 만들어내는 우도의 아홉 번째 풍경이란 뜻을 담은 2020 공공미술 프로젝트 우리동네미술 ‘우도9경’이다. 해당 프로젝트는 조형물과 벽화 등 쉽게 볼 수 있는 설치형 공공미술에서 벗어나 구술, 채록, 영상, 사진, 멀티미디어, 회화, 음악 등 다양한 매체로 제작해 기록 형태로 공공미술을 풀어나갔다. 작가와 주민들이 함께 우도의 삶과 자연을 조사·기록해 예술작품을 생산하고 이를 다시 지역의 문화적 자산으로 남겼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들의 작품을 영상으로 제작, 전광판 트럭에 담아 우도 곳곳을 누비며 상영하는 ‘움직이는 전시’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들의 작품을 영상으로 제작, 전광판 트럭에 담아 우도 곳곳을 누비며 상영하는 ‘움직이는 전시’

“공공미술은 일반적으로 순수예술과 달리 사회적 기능을 갖고 공적 영역 속에서 공동체 구성원들과 관계 맺는 미술로 통용되고 있어요. 이러한 정의를 근거로 ‘우도9경’은 작가와 주민, 작가와 지역의 상호작용이 활발한 활동 지대를 형성하고 이를 통해 지역을 기록하는 데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프로젝트는 크게 ‘주민 참여형 예술아카이브’, ‘리서치형 예술아카이브’, ‘우도9경 아트쇼’로 구성됐다. 11명(팀) 작가들은 작업별로 주민들과 매칭돼 직접 만나 소통하고 관계를 구축해나갔다. 그 속에서 우도만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작업을 진행했다.

먼저 ‘주민 참여형 예술아카이브’에서는 예술가들이 함께 협업할 우도 주민들을 발굴해 만나고, 설득하는 등 상호 조정해나가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데이터로 자신의 작품을 생산했다. 작업에 참여한 주민들은 낯설고 이질적 존재인 예술가를 받아들이고 함께 작업하며 공통의 기억을 갖게 됐다.

공현식 작가는 우도의 조일리, 천진리, 서광리, 오봉리를 다니며 마을 이장들과 인터뷰한 뒤 각 마을의 염원과 상징을 설치회화로 제작해 4개 리사무소 외벽에 설치했다.

곽민아 作 그림자 초상 '그대 그리고 나'./아트랩티/
곽민아 作 그림자 초상 '그대 그리고 나'./아트랩티/
홍시야 作 우도유람 드로잉 연작(4)./아트랩티/
홍시야 作 우도유람 드로잉 연작(4)./아트랩티/

곽민아 작가는 우도 주민과 형성한 개인적 관계를 이웃의 범주로 해석해 그림자 회화로 제작했다. 작가에게 그림자 회화는 이웃을 찾아가 못다 한 이야기를 하기 위한 도구가 되어주기도 하고 이웃에게서 받은 정다움을 기록하는 수단이 돼주기도 했다.

문효진 작가는 구전으로 전해지는 우도 해녀가를 악보와 영상으로 기록한 후, 새로운 음악으로 재해석하고 이를 다시 ‘음악다큐-해녀가’라는 뮤직비디오로 제작했다.

문효진 작가의 음악 다큐 작업./아트랩티/
문효진 작가의 음악 다큐 작업./아트랩티/
안수연 作 ‘바람 품은 풍경’ 중 ‘황경환의 우도’./아트랩티/
안수연 作 ‘바람 품은 풍경’ 중 ‘황경환의 우도’./아트랩티/

박정근 작가는 문봉순 민속학자와 함께 열 두 마을에 살고 있는 고령의 해녀들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채록문과 열두 점의 초상사진을 남겼다. 안수연 작가는 열 두 마을의 주민들을 한 명씩 만나면서 각 주민의 개인사와 관련된 장소를 배경으로 그 풍경 속에 주민을 담은 사진을 찍었다. 그런 까닭에 사진 속 풍경들은 인물의 삶을 들여다보게 하는 저마다의 서사를 품고 있다. 우도콜렉티브는 우도 주민들과의 인터뷰 과정에서 발견한 특별한 일상을 ‘우도 로맨스’라는 텍스트로 재구성했다. 이 작품은 책을 펼쳐 읽는 느낌으로 디자인된 영상과 서적으로 배포됐다. 이유진 작가는 우도에 사는 아이들의 기억과 꿈을 예술의 언어로 재현했다. 작가는 우도 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과 함께 추상화를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김건년 작곡가와 함께 동요를 창작하고 영상으로 남겼다. 자우녕 작가는 2년 동안 기록한 해녀 노트를 기반으로 무대에 오를 해녀를 캐스팅한 뒤 토크쇼 형식의 두 가지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먼저 ‘보이는 아트쇼-우도 약방’에서는 해녀가 늘 먹는 약들을 매개체로 삼아 고된 노동과 육체적 고통을 풀어냈다. ‘보이는 아트쇼-마음 회로’에서는 가부장적 사회가 정해 놓은 딸의 역할로 인해 학업을 포기하고 해녀의 길을 걸어야 했던 인생 여정을 들려줬다.

‘리서치형 예술아카이브’에서는 세 명의 회화작가들이 경험한 우도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표현했다. 전기숙 작가는 낮 동안만 머물다 나가는 관광객들은 알 수 없는 우도 4개 마을의 신비로운 밤 풍경을 회화로 기록했다. 이를 아트포스터로 제작해 주민들에게 나눠줬다. 정인희 작가는 길을 따라 걸으며 마주한 우도의 흔적과 풍경을 지도로 그려 넣었다. 이 그림들을 각 마을에 증정해 주민들과 공유했다. 홍시야 작가는 우도의 생명과 자연환경이 불러일으키는 심상 이미지를 드로잉으로 기록했다. 이 드로잉과 함께 우도의 농사주기나 해산물 채취 주기를 표시해 놓은 달력을 제작해 주민들에게 나눠줬다.

전기숙 作 야행성 풍경-멀리서 밤안개가 몰려온다./아트랩티/
전기숙 作 야행성 풍경-멀리서 밤안개가 몰려온다./아트랩티/
박정근 作 '우도직녀가' 삼양동 고매화./아트랩티/
박정근 作 '우도직녀가' 삼양동 고매화./아트랩티/

우도 안에서 진행했던 작업을 보다 많은 주민들과 잇는 과정은 ‘우도9경 아트쇼’에서 이뤄졌다. 우도9경 프로젝트 팀들은 우도9경의 로고와 우도콜렉티브의 작품이 새겨진 친환경 가방에 프로젝트 결과 도록, 아트포스터, 아트달력, 아트디저트 등을 담아 900여 가구에 증정하는 ‘딜리버리 아트쇼’를 진행했다. 또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들의 작품을 영상으로 제작해 전광판 트럭에 담아 우도 곳곳을 누비며 상영하는 ‘움직이는 전시’도 이뤄졌다. 마지막으로 우도9경 딜리버리 아트쇼에서 받은 친환경 가방을 들고 우도 내 돌담 사이사이를 누비고 다니면서 연출되는 풍경으로 주민이 전시의 장소이자 주체가 되는 ‘걸어다니는 전시’도 열렸다.

우도9경 프로젝트 감독을 맡았던 오현미 아트랩티 대표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당시에도 왜 조각 작품을 만들지 않느냐는 질문을 계속해서 받았다”며 “저희가 하려던 공공미술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풀어야 할 과제들이 있긴 했으나, 프로젝트로 하여금 공공미술에 대한 개념이 좀 넓힐 수 있다는 점에서 기획자로서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민들과 함께 눈에 보이는 어떤 하나의 성과를 내는 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관계를 빌드업해가는 것, 그 안에서 예술은 어떤 사회적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확실하게 풀렸다”며 “이런 방식의 작업이 살아있는 지역의 어떤 것들을 끄집어내고 작품화하는 데 상당한 자원이 될 수 있겠다는 확신도 생겼다”고 전했다.

한유진 기자 jinny@knnews.co.kr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한유진 기자의 다른 기사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