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지역자산 기록 프로젝트- 마산어시장 알바들] (6) 건어물 가게

‘마른 메르치’ 짠내·꼬순내에 담긴 45년 장사 내공

밥상 위 인기 반찬 멸치

기사입력 : 2022-11-16 20:34:08

밤낮으로 기온이 뚝 떨어지는 것을 보니 멸치육수가 늘 필요한 계절입니다. 뜨끈한 만둣국과 생선국이 자주 생각날 때니까요. 육수뿐인가요, 입맛 없을 때 밥을 물에 말아 멸치를 고추장에 푹 찍어먹기도 하고, 밑반찬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것이 멸치볶음이니 한국인의 밥상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멸치입니다. “메르치 사이소 ~ 메르치, 싱싱한 메르치 사이소~.” 귀를 울리던 트럭 확성기 소리가 생각나는 때, 알바들은 건어물 가게에서 일하기로 했습니다. 1977년부터 45년째 ‘오대양 물산’을 운영하고 있는 성순애(70) 대표님과 창원시청 소속 검도선수를 하다 14년 전부터 가업에 뛰어든 아들 최준영(43) 대표님 따라서요.

이슬기 기자와 이아름 PD가 오대양물산 최준영·성순애 대표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두 대표는 마사나이(MASANAI)가 건어물 가게 맞춤으로 선물한 ‘메르치 사이소’모자를 쓰고 있다.
이슬기 기자와 이아름 PD가 오대양물산 최준영·성순애 대표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두 대표는 마사나이(MASANAI)가 건어물 가게 맞춤으로 선물한 ‘메르치 사이소’모자를 쓰고 있다.


오늘의 할 일
멸치 경매 견학
아귀채 뜯어 포장하기
오징어채 진공포장하기
마른 멸치 다루기
성순애 대표님 인생 기록


◇사라진 멸치

08:40 57년의 역사를 가진 멸치권현망수협 마산지소 위판장에 도착했습니다. 경매 전 미리 물건을 보면서 매입할 멸치들을 점찍어두고 계신 최준영 대표님을 만나기 위해서 입니다. 32번 중매인 최 대표님은 전국적으로 멸치가 없어서 걱정이라시네요. 이날 경매를 기다리는 멸치는 1.5㎏ 상자 기준 6000~7000상자 남짓. 5만 상자가 들어올 때에 비하면 1/10 수준에 불과합니다.

“철마다 잡히는 멸치가 달라요. 지금은 6~7㎝ 크기로 국물 우릴 때 쓰는 ‘대멸’이 나와야 하는데 계속 작은 ‘세멸’만 잡히는 중이에요. 그러다보니 국물용으로 쓰지 않던 ‘중멸’까지 국물용으로 찾으면서 대멸은 물론 중멸 가격까지 오르고 있어요.”

멸치 가격이 2배 넘게 올라 올 추석 멸치선물세트 주문을 제대로 받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함께 다녀보니 때깔 좋은 멸치가 띄지 않았습니다.

“이건 냉동했던 걸 내놓은 거예요. 딱 봐도 안 좋죠? 종이에 노란 기름이 배어 나오고. 그런데 요새는 멸치 자체가 잘 없으니 이 제품도 팔리는 거죠.”

위판장에 계신 분들이 멸치 실종 원인에 대해 각자 의견을 내놓으셨는데요, 기후위기, 50년간 똑같은 금어기, 무분별한 세멸 어획, 갑작스레 마산만에 등장한 정어리떼 영향 등이 언급됐습니다.

멸치경매가 이뤄지는 멸치권현망 수협 마산지소 위판장.
멸치경매가 이뤄지는 멸치권현망 수협 마산지소 위판장.

09:05 경매 시작. 40여명의 중매인이 빼곡하게 들어앉아 있습니다. 생산자와 크기별 멸치 종류가 모니터에 뜨고, 견본 멸치 한 박스를 들이부으면 중매인들이 구입 의사를 표시하고 금액을 입력합니다. 제시된 금액을 부르는 경매사의 말이 너무 빨라 외부인에겐 외계어 같습니다. 경매가 진행되는 동안 지난달 알바했던 커피 리어카의 종숙 선배님이 현장 공부를 시켜주십니다.

그래도 너네 왔다고 멸치가 좀 있네. 지난주 토요일에는 아예 없어 경매가 못 열렸는데 말이야. 예전에는 경매를 손가락으로 표시하며 진행했고, 경매 마친 상자에 중매인·구매 가격·수량을 분필로 적은 나무 막대기가 하나씩 꽂혀 있었는데, 몇 년 전부터 전자경매 방식으로 바뀌어서 이제 스티커를 붙여.”

경매 종료. 박스들 중에서 오대양물산의 중매인 번호인 32번이 붙은 상자들이 보입니다.

09:50 “전체적으로 물건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꼭 사야 하는 것들이 있어 샀어요. 지금 가격이 높을 때라 많이 사들일 수도 없고 난감합니다. 비쌀 때 사뒀다가 혹시라도 내년에 물건이 많이 나오게 되면 제 값을 받기 어려울 테니까요.”


◇안주는 못 참지

10:30 경매를 마치자 마자 최 대표님은 소매상에 멸치를 배달하러 가시고, 알바들은 가게로 향합니다. 최 대표님 부인이신 김성미(43) 선배님과 첫 번째로 할 일은 박스째 있는 아귀채 1㎏ 15봉지 포장하기. 젓갈가게에서 연마한 저울 스킬을 써야 할 때입니다. 비닐 한 장 무게가 25g이니 1025g을 담아 포장하면 됩니다. 아름 PD가 뭉친 아구채를 손으로 뜯은 뒤 비닐에 척척 담습니다. 고소하고 짭짤한 향이 코를 찌르고, 손에서부터 쫄깃함이 느껴집니다.

“예전에는 멸치, 김 위주로 많이 팔았는데 요즘 사람들은 안주류를 많이 찾아서 파는 품목이 좀 늘었죠.”

아귀채, 아구스틱, 쥐포, 오징어귀, 먹태, 명태껍질 튀김, 제철 맞은 곱창김, 새우를 먹은 오사리 멸치에 캐슈넛, 아몬드, 호두, 브라질너트, 호박씨, 해바라기씨 같은 견과류 등 안주의 향연입니다. 지천이 안주라 술이 당기실 것 같은 예감이 드네요.

“당연히 맥주가 구비돼 있지. 늦게까지 포장하면 목도 마르고 정말 힘들거든. 일이 고단할 때 한 잔씩 해. 줄까요?”

유혹이 강했지만 본분을 잊지 않고 일에 집중합니다. 비닐에 담은 아귀채를 기계로 봉하고 그 위에 스티커를 붙이는 작업이 남았거든요. 비닐을 평평하게 잡고 봉해야 하는데 요령이 없어 계속 비뚤어집니다. 스티커를 붙이는 방향도 헷갈리고요. 술 안 마셔도 초보들에게는 어려운 작업입니다.


성순애 대표와 아귀채를 손질하고 있는 이아름 PD.
성순애 대표와 아귀채를 손질하고 있는 이아름 PD.
이 PD가 성 대표, 김성미씨와 함께 아귀채를 담아 무게를 측정하고 있다.
이 PD가 성 대표, 김성미씨와 함께 아귀채를 담아 무게를 측정하고 있다.
이슬기 기자가 손질된 아귀채를 진공 포장한 뒤 오대양 물산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이슬기 기자가 손질된 아귀채를 진공 포장한 뒤 오대양 물산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이 기자가 최준영 대표와 함께 택배를 보내기 위해 상품을 옮기고 있다.
이 기자가 최준영 대표와 함께 택배를 보내기 위해 상품을 옮기고 있다.


◇특별한 손님 관리법

11:10 포장하고 박스를 나르는 사이에도 손님이 오갔는데요 손님들이 결제할 때마다 지갑에서 내미는 것이 있었습니다. 성미 선배님의 아이디어로 시작한 오대양 물산만의 ‘도장 쿠폰제’인데요. 9번 도장을 찍으면 10번째 가게를 찾았을 때 5000원 할인을 해주는 도꼬이(단골) 서비스입니다. 최 대표님의 밴드를 통한 판매와 더불어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찐단골’은 도장 수에서 그대로 드러납니다.

오대양 물산의 도장 쿠폰.
오대양 물산의 도장 쿠폰.

“나는 10년째 단골인데, 견과류 사러 자주 와요. 알아서 질 좋은 제품을 주는 거 아니까. 우리는 한 번 믿으면 계속 오거든.(박영희·64·마산회원구 합성동)”

구매금액별로 온누리상품 증정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김장철 특별행사를 소개해 손님들이 저렴하게 장 볼 수 있도록 알려주기도 합니다. 이제는 성 대표님과 남편, 최 대표님과 며느님까지 네 분을 각각 찾는 단골들이 따로 있습니다.


◇광주사람, 마산어시장 사람 되다

12:15 45년 가게의 저력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광주 출신의 부부가 결혼한 직후부터 마산의 중심 어시장에서 장사를 시작하게 되면서 겪은 고충이 컸기 때문입니다. 당시만 해도 지역감정이 심했고 특히 전라도 사람에 대한 비하나 조롱이 극에 달하던 때라고 해요.

“신혼여행 다녀오자마자 장사를 시작했는데, 사투리를 못 알아들어서 서로 고됐지. 25살이었는데 정말 너무 힘들고 상처를 많이 받아서 울기도 했고요. ‘전라도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소리 안 들으려고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몰라요. 어시장에 애들을 업고 걸어서 출퇴근하면서도 행동거지 하나 조심하고, 많이 베풀기도 했고요. 전라도쟁이는 애들도 별나다는 소리 안 듣게 하려고 엄하게 키우느라 우리 아들들 기를 다 죽여서…. 지금 생각하면 너무 미안합니다.”

이제는 광주에서 산 날보다 2배 정도 많은 날들을 마산에 살아낸 진짜 마산사람, 누구보다 마산어시장이 부활해 관광객이 북적대길 바라는 진짜 마산어시장 사람입니다.


▶지역자산 기록 보고

샘앤지노 / Wave02


욕지도에서 태어난 작가가 고향을 오가는 배에서 찍은 파도 사진입니다. 햇빛에 반짝이는 물결을 일컫는 ‘윤슬’에 눈길이 갑니다. 잔잔한 빛에 평화로운 기운이 감도는 파도 작품들을 볼 때마다 멸치가 떠올랐습니다. 특유의 반짝임이 은빛의 멸치 떼가 등을 내보이며 헤엄치는 데서 오는 것 같았거든요. 전래동화에서 까치나 까마귀, 거북이가 하늘과 바다에 다리를 놓아주는 것처럼요. 파도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다양한 감정을 담으려는 시선을 가진 그에게, 특별히 은빛 멸치들이 길을 내어주며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는 건 아닐까요. 다음 통영행에서는 바다를 한 번 더 주시해보려 합니다. 저와도 인사를 나눠줄 반짝임을 찾아볼 참입니다.

글= 이슬기 기자·사진= 이솔희 VJ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이슬기 기자의 다른 기사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