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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새벽을 열다 - 정현수(동화작가)

기사입력 : 2022-11-24 21:03:49

새벽 3시. 나는 틀림없이 그 시간에 잠을 깨어 희미한 빛에 의존해서 운동 옷을 챙겨입고 현관문 손잡이를 비틀었다. 안과 밖의 감지 등이 눈을 빠끔히 뜨고 나의 새벽을 함께 하겠다고 두 팔 벌리고 다가섰다. 팔에 안긴 빛은 나의 세상을 밝혀주는 오늘 하루의 염원이자 희망이다. 승강기를 타고 일 층 현관으로 나서면 이 시간에만 맡을 수 있는 달큼한 새벽의 내음이 코끝에 와닿아 코를 벌렁거려 본다.

문명의 발달로 발 더듬이가 필요하지 않은 지금의 세상살이가 얼마나 좋아졌는지 입을 오므리고 휘파람을 불고 싶어졌다.

‘일찍 깨는 새가 먹을 게 많다’라고 말하자 → ‘일찍 깨는 새는 잡아먹힐 수 있다’라고 받아치는 세상에서 내가 새라면 이제껏 잡아먹히지 않고 건강과 활기찬 삶의 기운을 더 보태기만 한 것 같다.

내가 운동을 시작한 지, 하 오래되었다. 마땅히 운동하고자 시작한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의 무게에 짓눌러 잠 못 들던 고통과 절망의 시기, 새벽달이 환히 빛났던 어느 날 어쭙잖은 걸음이 지금이 된 것이다. 그 시절엔 건강을 위한 운동이란 말이 없었을 때였다. ‘자연보호운동, 새마을운동’으로 온 나라가 법석을 떨던 시대였기에 건강을 위한 ‘운동’은 정신 나간 사람이 하는 짓이라는 것을 실감 나게 깨닫기도 해 주었던 ‘젊은 날’이었다.

“저 여자!”

머리 정수리 쪽을 검지로 뱅뱅 돌리며 나를 가리키는 사람들에게 나는 머리에 꽃을 꽂은 ‘저 여자’로 살아 오지 않았나 싶다. 그들은 그땐 몰랐겠지, 건강을 위하여 반드시 운동해야 하는 이런 세상이 올 것이라고 말이다.

지금도 지인들은 나에게 걱정보다 궁금함으로 묻는다. ‘그렇게 어둔 시간이 무섭지 않냐, 어찌 그 이른 시간에 운동을 나갈 수 있냐?’ 할 때 나는 딱 두세 마디 말로 전부를 뭉갠다.

“안 무서워, 딱 내 마음 같은 사람들뿐이지!”

새벽은 가슴을 열고 마음을 열고 나를 여는 시간이 된다. 그 시간을 즐기다 보면, 환하고 밝은 낮보다 더 밝아 보이고 경쾌한 마력이 생긴다. 흐르는 강물도 용기를 주고 이름 모를 풀꽃들도 발등을 간지럽혀 응원해주는 혼자만의 오붓한 시간이다. 가끔은 보물찾기하는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어둠을 기웃거리는 커튼을 걷고 밝은 빛을 향한 발걸음, 크게는 그날의 계획을 짜고 작게는 아침밥상에 무엇을 차려낼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내 하루의 알찬 기록장이 되었다.

즐거움도 즐겁지 아니한 것들도 그 새벽은 다 헤아려주고 모두를 풀어헤쳐 주는 마법의 시간이기도 하다. ‘새벽’이란 그 시간을 가져보라. 배려와 희망이 그득한 잔칫상이 될 것이다.

동녘에서 환히 밝아오는 맑은 겨울 새벽빛은 태어나는 아기의 기운찬 울음소리와 같을 것이다. 세상을 밝혀줄 아기의 탄생, 새벽은 그런 기쁨이 넘쳐나는 시간이다. 새로운 희망이 눈물 나게 아름답고 숭고하여 밝아오는 오늘을 맞이함을 알게 되리라.

세상이란 얼마나 아름답고 기특한 것인가, 새벽을 여는 걸음걸이는 어둠을 물리치는 시대의 개척자임이 틀림없다. 겨울 아침의 기분 좋은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세상과 나 자신을 화해시킨 위대한 평화를 생각했다.

정현수(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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