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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동그라미에 대한 小考- 최혜인(소설가)

기사입력 : 2022-12-08 19:31:10

초등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군복 문양의 셔츠와 반바지를 빳빳하게 다려 입은 머슴애 하나를 선생님께서는 유난히 예뻐했습니다. 차례로 그네를 뛰게 할 때도 제일 오래 태웠고 뒤에서 밀어주는 힘도 표 나게 힘찼습니다. 2학년 때였습니다. 양갈래로 곱게 땋은 머리에 커다란 눈을 가진 계집애 하나를 선생님은 또 유난히 예뻐했습니다. 4교시를 마치면 나누어 주는 급식 빵도 두 개씩 주곤 했습니다. 둘은 예비역 장교와 학교 간호 선생님의 자녀였습니다.

반면 1학년 때도 2학년 때도 선생님의 관심 밖에서 유리 인간처럼 존재하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괜한 미움을 받아 억울한 매를 맞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코찔찔이 그 아이들은 주로 가난한 농부의 자녀들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차별을 받아야 하지?’

이후, 필자는 인간 삶이 결코 평등하지 않다는 걸 삶의 굽이굽이에서 목도하게 됩니다. 학교에서는 끊임없이 인간은 평등하다고 교육하는데도 말입니다.

그리고 소년에서 청년으로, 청년에서 중년으로의 삶의 이적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예쁨을 받은 그 아이도, 억울한 매를 맞은 그 아이도 결국은 자기가 선택한 삶의 과정에 있었던 거라고.

현생은 전생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내 생의 뿌리는 현생입니다. 내게 일어나는 억울한 사건 사고들, 병마들, 죽고 싶을 만큼 힘들게 얽히는 인간관계들은 이렇게 돌고 도는 생들에서 지어놓은 업이, 알맞은 주파수를 만나 현실에 나타난 것입니다. 극도의 부정적인 감정을 흘려보내지 않고, 마치 보물인양 세포 깊숙이 새겨 넣은 결과인 것이지요.

전생과 현생, 그리고 내생은 과거 현재 미래에 정확히 대입되는 개념입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없이 반복되는 동그라미입니다!

동그랗게 그려가는 삶의 여정 위에서 겪는 온갖 일들, 그 일들로 인한 부정적인 감정들이 뼈와 살, 마음에 새겨지는 것, 그것이 바로 業입니다.

업이 쌓이고 쌓이면 두께가 형성됩니다. 업장입니다.

‘나 죽어 하늘로 가리라’는 어느 시인의 절규가 아니어도 우리 모두는 죽어 하늘로 갑니다. 하늘은 우리 인간의 궁극적 본향이기 때문입니다. 하늘로 가서 다시 새판을 짠 후 스스로가 선택한 태(자궁)의 씨앗이 되어 옵니다. 그러니 삶의 굴곡 앞에서 하늘을 원망하고 조상을 원망하고 사주를 탓하는 것은 무지한 처사입니다.

사주란, 내가 이생에서 걸어가야 할 로드맵입니다. 그 길은 동그랗게 돌고도는 윤회의 쳇바퀴에서 과거의 부정적 업을 닦아내고 선한 업을 지어서 굴절된 균형을 바로잡기 위한 지도입니다.

그간 다섯 번째 걸친 글에서 독자님들께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내 인생의 주인은 나’라는 것입니다. 삶은 자기가 만들어서 자기가 풀어가는 시험지입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자기가 만들었기에 결국은 풀어낼 수 있습니다. 단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말입니다.

한 해가 또 저물어 갑니다. 가족이나 친구, 동료와의 관계에서 어려운 일이 있다면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만든 나와 나의 영의 합작품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새해에는 어제보다 성장한 하루하루 보내시길 발원합니다. 사랑합니다.

최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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