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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창원시 ‘올해의 자원봉사왕’ 전정숙 자원봉사단協 진해지회장

“자원봉사 30년 장수 비결? 좋으니까! 할수록 행복해지니까”

2003년부터 1591회 6379시간50분 봉사

기록 이전인 1990년대부터 활동

기사입력 : 2022-12-28 21:04:46

“뭔가 그럴 듯한, 거창한 이유가 듣고 싶겠지만 다 나 좋자고 하는 일이라 해줄 말이 없네. 봉사를 해보면 알지. 왜 할 수밖에 없는지.”

주변에서 ‘출근하듯 봉사한다’는 말을 듣는 사람에게 “봉사, 왜 하냐” 물은 게 잘못이다. 직장인이 매일 출근을 하는 것처럼 봉사가 당연하다는 사람이니, 말 그대로 그럴 듯한 대답이 올 리 만무하다.

1591회, 6379시간 50분. 창원시가 최근 선정한 ‘2022년 올해의 자원봉사왕’ 수상자, 전정숙 창원시자원봉사단체협의회 진해지회장의 봉사시간이다. 봉사시간 기록이 시작된 시점이 2003년 1월 16일부터인데, 봉사인생을 듣자 하니 그보다 훨씬 이전인 1990년대부터 봉사를 시작했다는 답이 온다.

“엄청난 시간을 봉사하셨다”는 말에 감흥은커녕 “봉사시간이 얼마라고요?” 되묻는 전정숙 지회장의 실제 봉사 기여는 1만 시간을 훌쩍 넘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사코 “다른 훌륭한 분들 많다”며 인터뷰를 거절하다 아직 봉사에 눈 뜨지 못한 사람들에 봉사를 홍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하니 그제서야 시간을 내어주겠다는 전정숙 씨에게 봉사란 어떤 꾸밈말도 필요 없는, 보람 그 자체다.

‘창원시 올해의 자원봉사왕’ 수상자로 선정된 전정숙 창원시자원봉사단체협의회 진해지회장이 창원시 진해구 여성회관진해관 1층 자원봉사센터에서 손하트를 그리며 웃고 있다./김승권 기자/
‘창원시 올해의 자원봉사왕’ 수상자로 선정된 전정숙 창원시자원봉사단체협의회 진해지회장이 창원시 진해구 여성회관진해관 1층 자원봉사센터에서 손하트를 그리며 웃고 있다./김승권 기자/

“계기랄 것도 없지. 첫째 애가 중학생 때였나 동네에서 수급자 어르신들을 위한 봉사자를 모집하더라고. 뭐 못할 거 시키겠나 싶어 손 들었지.”

그렇게 전 씨는 자은동 사회복지관에 발을 들였다. 특별히 봉사를 마음 먹은 이유가 있냐고 물으니 “주부였거든” 한다. 무슨 뜻이냐 다시 물으니 “특별한 직업이 없으니 할 일이 없었다는 뜻”이라고 부연한다.

당시 자은동에는 거동이나 생활이 어려운 기초생활수급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청소는 기본이고 반찬을 해다 나르고, 어르신들의 몸을 씻기고, 자식 없는 어르신들의 생일상을 차렸다.

거리낌 없이 봉사를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 시절만 해도 양보의 미덕이 당연히 강요되던 ‘맏이’이신가 편견을 들이미니, “귀하게 자란 6남매 중 막내”라며 웃어 보인다.

‘창원시 올해의 자원봉사왕’ 수상자로 선정된 전정숙 창원시자원봉사단체협의회 진해지회장./김승권 기자/
‘창원시 올해의 자원봉사왕’ 수상자로 선정된 전정숙 창원시자원봉사단체협의회 진해지회장./김승권 기자/

“봉사 시작하고 처음엔 힘들었지. 집에서 애지중지 자랐다니까. 사실 잘 모르니까 무턱대고 시작한 건데 이게 또 한 번 맛을 보니 헤어나오질 못하겠더라는 거지.”

봉사를 거듭하다 보니 쉬운 날도 어려운 날도 있었지만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더란다. 하루는 ‘재밌었다’, 또 하루는 ‘힘들었다’는 소감만 바뀔 뿐.

가장 힘들었거나 뿌듯해서 기억에 남는 봉사가 있냐는 질문에 전정숙 씨는 잠깐 고민하다 “안타까운 사연이 떠오른다”며 이야기를 푼다.

“폐지 줍는 한 어르신을 돌볼 때가 있었는데 온천이나 이런 데 갈 기회가 있으면 항상 모셨지. 하루는 신원조회를 해야 했는데 자식이 둘이나 있는 거야. 무려 이 진해에. 전화 걸어 ‘어르신을 좀 돌볼 수 없겠냐’ 물으니 자기 아들 유학 보내야 해서 모실 돈이 없대. 드라마에서만 나올 것 같은 자식이 부모를 내팽개치는 일이 봉사활동을 다녀보니 참 많아.”

봉사활동에는 노인이나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을 돕는 것 외에도 사회문제의 해결을 돕는 것도 있다. 태안 기름유출 사고, 태풍 힌남노 피해, 그리고 아직도 진행 중인 코로나19도 이에 포함된다. 타 지역의 재난·재해를 돕는 것은 일상의 봉사에 비해 이동 시간을 좀 더 들이는 정도지만, 코로나19 같은 전염병 관련 봉사활동에는 위험을 담보해야 한다. 내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일이다 보니 조금 꺼려지지 않냐는 질의를 던져보지만 “다들 없어서 못한다”는 대답이 바로 온다.

전 씨는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된 2020년부터 지역을 돌며 방역수칙 홍보활동 및 방역봉사를 한 데 이어 2021년 4월부터는 진해예방접종센터를 안내하고 예진표 작성을 지원하기도 했다.

“우리 봉사자들은 다들 천사들이지. 열기가 대단해. 봉사 요청이 들어오면 봉사자들 메신저에 소식을 올리는데, 조금만 늦게 보면 이미 다 선점해서 하고 싶어도 못해.”

창원시 선정 ‘2022년 올해의 자원봉사왕’ 전정숙 회장 활동 사진.
창원시 선정 ‘2022년 올해의 자원봉사왕’ 전정숙 회장 활동 사진.
창원시 선정 ‘2022년 올해의 자원봉사왕’ 전정숙 회장 활동 사진.
창원시 선정 ‘2022년 올해의 자원봉사왕’ 전정숙 회장 활동 사진.

그럼에도 코로나 시국에는 타의에 의해 봉사활동이 저조한 적이 한 번 있었다고 부연한다. 봉사자도 누군가의 가족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유행하고 지역의 큰 축제인 군항제가 몇 년째 열리지 못하고 있지만 축제만 없을 뿐 사람들은 여전히 벚꽃을 보러 오거든. 그렇다 보니 안전을 위해서 관광객들에게 ‘마스크 써달라’, ‘거리두기를 지켜달라’ 같은 방역수칙을 일러주는 봉사가 필요한데 봉사자들은 서로 하겠다 나섰지. 근데 한참 코로나19 상황이 심하던 때는 봉사자들의 자식들이 자기 엄마를 뜯어 말리는 상황이 된 거지. 그래서 한 번은 봉사가 취소된 적 있지.”

그가 봉사를 다니다 보면 자주 듣는 말이 있다. “보수는 얼마 받아요”다. 최근 ‘자원봉사상’을 받고는 더 자주 듣는다고.

“그럼 내가 이렇게 답해요. ‘지금 당장 받지는 않고 나중에 한꺼번에 받는데, 엄청 많다’고.”

봉사가 쉽지 않은 이유는 내 시간, 그리고 돈을 남을 위해 쓰는 일이기 때문일 거다. “봉사하며 가장 많이 써본 건 얼마 정도냐”는 물음에 “많이 쓰지. 근데 그건 뭐 하게요. 기사에 적게? 마세요 말아. 나 좋아서 쓰는 건데 뭐 그게 자랑이라고.”

창원시 선정 ‘2022년 올해의 자원봉사왕’ 전정숙 회장 활동 사진.
창원시 선정 ‘2022년 올해의 자원봉사왕’ 전정숙 회장 활동 사진.
창원시 선정 ‘2022년 올해의 자원봉사왕’ 전정숙 회장 활동 사진.
창원시 선정 ‘2022년 올해의 자원봉사왕’ 전정숙 회장 활동 사진.

전 씨는 30년 정도 봉사 인생 대가를 바란 적은 없지만, 근래 봉사자들이 줄어드는 현실을 토로하면서 봉사자들의 공적을 인정하는 방식을 조심스레 제안해본다. “지금도 일정시간 이상 봉사한 사람들은 공영주차비나 체육시설 이용 할인 등 혜택이 있긴 한데, 그보다는 나중에 우리 봉사자들이 늙어서 아프거나 시설에 가게 됐을 때 그런 걸 지원해준다면 그간 봉사해온 보람은 있을 것 같네.”

여러 이유에서 아직 봉사를 접하지 못한 사람들이 봉사를 시작할 수 있도록 ‘봉사의 장점’을 알려 달라고 했더니 “그냥 내 보람이지. 더 이상 뭐가 있나. 어떤 말로 설명해도 확 와닿지는 않을 것 같다” 한다.

창원시 선정 ‘2022년 올해의 자원봉사왕’ 전정숙 회장 활동 사진.
창원시 선정 ‘2022년 올해의 자원봉사왕’ 전정숙 회장 활동 사진.

“봉사를 해보면 알아요.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얼마나 필요한 사람인지. 다들 ‘봉사를 안 해봤네’, ‘저걸 어떻게 하나’ 하지만 어느 날 길을 지나다 무거운 걸 든 어르신을 도와드린 적은 있을 거 아냐. 뿌듯했죠? 봉사는 대단하고 거창한 게 아니야. 누가 내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응해주는 것이 바로 봉사지. 우리는 모두 알게 모르게 봉사를 하며 살고 있고. 내가 운이 좋아 상을 받기는 했지만 나보다 대단한 사람이 많다는 말 뜻이 그거지. 봉사 한 번 해보세요.”

김현미 기자 hm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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