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 보는 경남의 명소 (59) 함안 말이산 고분군
무덤 지키는 말 한 마리, 흰 구름으로 떠돈다

아무렇지 않게 아무렇게나
죽음 뒤에 온 화환을 생각해요
꽃이 시들고 나면 텅 빈 바닥에 풀이 자랄까요
슬퍼하고 싶지 않은데
계절이 너무 싱싱해서 고개를 돌려버릴 수밖에 없어요
외면한 채로 꼼짝없이 남아 있는 날들을 견뎌야 합니다
하루가 또 다른 배경 속으로 사라지면
떠날 사람은 떠나고 남은 사람들은 웃음을 잊어버려요
더 단단한 벽과 더 외로워지는 벽을 치면서
계속해서 높아지는 헛웃음을 반복하면서
자신을 회의론자라고 불러요
그러면 조금은 안심이 되고 눈물이 빠르게 빠져나가요
쓸데없이 화사한 화환은
그럴 리가 없는 데도
뿌리를 내리고
한 그루 나무가 되기로 하죠
들썩이던 어깨가 동그란 무덤이 되는 걸
물끄러미 지켜보기로 하죠
위로같이
☞ 함안에 있는 말이산 고분군에서 하루를 보낸다. 말이산(末伊山)은 머리산으로 아라가야의 시조가 등장하고, 역대 왕들이 묻혔던 우두머리의 산이었다. 크고 작은 무덤 백여 개를 만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수천 년이나 지난 지금 그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을 만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죽음 뒤에 온 화환처럼 무덤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기억장치인가. 위로같이, 그렇게 오래된 것 같지 않은 한 그루 나무가 오롯이 지키고 있는 무덤이 하늘에 닿을 듯 맑은 하루가 또 무심히 지나간다. 어쩌면 고분에 그려졌을 벽화의 말 한 마리가 주인의 무덤을 아직도 지키고 있는 듯 흰 구름으로 떠돈다. 아득한 시간을 건너 피로 전해지는 우리들의 과거가 다시 또 몇 천 년을 이어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아무렇지 않게 아무렇게나 흘러가는 시간을 지금 여기에서 만난다.
시·글= 이기영 시인, 사진= 김관수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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