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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어떤 ‘자잘함’

기사입력 : 2023-01-08 20:58:24

말문이 턱 막힐 때가 있다. 꼭 필요한 질문을 하고, 대답을 잘 듣는 게 기자의 자질이건만 어떨 땐 자꾸만 입술을 앙다물게 된다.

포털사이트에서 ‘자잘하다’ 네 글자를 쳐본다. [(주로 ‘자잘한’의 꼴로 쓰여) (대상이) 여럿이 다 하찮고 소소하다.]

국어사전에는 주로 ‘자잘한’의 꼴로 쓰이는 ‘자잘한 살림살이’, ‘자잘한 일’과 같은 예시도 친절하게 알려준다.

지난달 15일 밀양시 한국카본 사포공장에서는 폭발사고가 발생, 1명이 죽고 5명이 다쳤다. 제품을 식히는 냉각팬이 작동을 멈춰 이를 수동으로 여는 과정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25도 안팎이어야 할 냉각수 온도가 이날 110도까지 올라갔다. 사고 전날 열교환기에서 스팀이 샌다는 걸 회사는 알고 있었다.

일주일 뒤인 22일 한국카본의 또 다른 밀양 공장에서는 하청 노동자가 작업 중 환풍기가 움직이지 않자 전원 버튼을 점검하러 절단기 작업대 안에 들어갔다가 절단기가 갑자기 작동하면서 어깨를 크게 다쳐 봉합 수술을 받았다. 절단기 근처에 접근 못하도록 울타리를 설치하거나 전원을 자동 차단하는 센서가 있었어야 했으나 없었다. 노동조합은 지난 6일 한국카본 대표이사를 고용노동부에 고발했고, 한국카본은 안전 컨설팅을 받겠다는 대책을 뒤늦게 내놓았다.

자잘하다는 표현은 이럴 때도 쓰인다.

“하청업체라 우리 회사원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깊이 파고들어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실은 우리가 답변하는 것도 애매하고요 이게. 그런데 자꾸 이게 지금 노조라든지 이거 자꾸 엮어서 얘기하려고 하는 것 같더라고요. 다 지난, 한 달 지난 걸 갖고 또 엮어서 쓰는 것도 저는 좀 의아한데…. 누가 퍼트렸는지 이거 중요한 것도 아닌데 항상 이런 짜잘짜잘한 것들이 있거든요. 사고가 사실. 그렇게 이해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말씀 잘 들었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원하는 대답을 잘 들은 게 맞는지 모르겠다. 자잘한 일과 죽지 않을 권리는 등가의 선상에 있는가. 그러곤 속으로 중얼거린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도영진(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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