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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963) 서원강회(書院講會)

- 서원에서의 강학 모임

기사입력 : 2023-01-10 08:03:47

1180년 주자(朱子)가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을 재건했는데 후대 모든 서원의 전범(典範)이 됐다. 서원의 강회(講會)는 서원의 중요한 학술행사의 하나이다. 선비들이 한자리에 모여 함께 선현의 글을 읽고 토론을 통해서 서로간의 생각을 주고받는 모임이었다. 후대로 오면 우리나라가 중국보다 강회가 더욱더 활성화됐다.

21세기 첨단과학의 시대에 옛날 강회가 열려 새로운 역사를 써야 될 일이, 지난 1월 6~8일 광주(光州)의 월봉서원(月峯書院)에서 있었다. 도산서원(陶山書院)과 합동으로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과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 선생의 글을 읽고 토론하는 학술의 광장을 펼쳤다.

월봉서원은 퇴계선생의 제자 고봉선생을 향사하는 곳이다. 훼철을 당했다가 1991년에 완전히 복원하였다. 지금은 문화재청으로부터 3년 연속 활용 우수 서원으로 선정된 곳이다. 퇴계선생의 제자 309명 가운데서 고봉은 32세의 늦은 나이에 문하에 출입해 배운 기간이 그리 길지 않다.

퇴계 고봉 하면, 먼저 사단칠정(四端七情)에 대한 8년간의 논변(論辨)만 거론하면서 공리공론(空理空論)으로 몰아붙여 은근히 비웃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공리공론이 아니고 수신(修身)의 앞 단계인 마음을 바로잡는 정심(正心)의 단계에서 마음을 바로잡기 위해서 사단칠정이나 이기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려는 목적에서 진행한 논변이었다. 고봉은 선생이 가장 인정하는 제자로 아름다운 사제관계(師弟關係)였다. 선생은 고봉의 실력을 높이 인정했다. 1569년 마지막 귀향 때 선조의 요청으로 자신을 대신할 학자로 고봉을 추천했다. 그리고 선생 선친의 묘갈명을 고봉에게 부탁했다. 나중에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선생의 신도비문(神道碑文)을 지어달라고 부탁 받았을 때 자신 대신 고봉을 추천했다.

도산서원과 월봉서원의 원장을 겸하고 있는 김병일(金炳日) 원장이 합동으로 강회를 개최하자고 맨 먼저 제안했다. 이에 안동대학교 안병걸(安秉杰) 명예교수와 전남대학교 김경호(金璟鎬) 교수가 원장의 뜻을 받들어 정성을 다한 기획과 준비로 강회가 성립됐다. 한문학 유학 분야의 저명한 학자인 이광호(李光虎), 김언종(金彦鍾) 교수 등 각지에서 참여한 교수, 학자, 도산서원 유림, 월봉서원 유림, 호남학연구원 원장 등 관계자, 고봉 후손 등 40여 명이 3일 동안 적극적으로 참여해 성황을 이루었다. 필자도 강장(講長)으로서 동방한학연구원(東方漢學硏究院) 사무총장 문영동(文映東) 박사와 함께 참여했다. 이번에 번역전문가들의 정확한 번역과 해설, 젊은 교수들의 활발하면서도 거리낌 없는 토론과 의견 제시, 강장들의 의미 부여는 한국학 발전에 희망을 더했다. 강구율(姜求律) 교수는 강학의 분위기를 한시로 창작, 음송(吟誦)해 감동을 더했다.

지금 서원이 많이 복원됐는데, 향사만 치르지 말고 강회의 모임을 활성화하여 전통학문을 계승 발전하는 데 기여하기 바란다.

* 書 : 글 서. * 院 : 집 원.

* 講 : 익힐 강. * 會 : 모일 회.

동방한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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