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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스런 맛에 찰칵… 흐릿한 멋에 홀딱

장롱 속 디카·캠코더 찾는 Z세대

레트로 감성 꾸준히 유행하며

2000년대 초 판매된 디카·캠코더 인기

기사입력 : 2023-01-24 20:09:39

“요즘 유행인 빈티지 캠코더 판매해요. 영상 딱 빈티지 느낌으로 잘 나와요.”

지난 23일 창원에 사는 한 판매자가 중고거래 애플리케이션(앱) 당근마켓에 ‘삼성 VM-D7500S 캠코더’를 판매한다고 올린 글이다. 2004년께 출시된 이 캠코더 이외에도 당근마켓, 번개장터 등 중고물품 거래 앱 사이트에는 2000년대 초반 판매된 디지털카메라(디카)와 캠코더를 팔거나 사겠다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에는 이 시기의 디카나 캠코더만을 올려 판매하는 계정이 따로 있고, 판매자가 올리자마자 금세 팔려나갔다. 이처럼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 출생한 ‘Z세대’를 중심으로 2000년대 초 출시된 디지털카메라, 캠코더로 사진과 영상을 찍는 것이 인기를 얻고 있다.

박지수씨가 창원의 한 카페에서 자신의 캠코더를 살펴보고 있다.
박지수씨가 창원의 한 카페에서 자신의 캠코더를 살펴보고 있다.

◇디카·캠코더 찾는 Z세대= 이 같은 열풍은 레트로(복고) 감성이 지속적으로 유행하는 가운데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반 Y2K(2000년을 1990년으로 인식하는 버그를 뜻하는 데서 유래한 1990년~2000년대 초반 감성을 지칭하는 표현) 세대의 향유하던 패션과 소품들이 주목을 받으면서 시작됐다. 2021년부터 옛 MP3플레이어와 폴더 휴대폰 등이 관심을 받다 한국에서는 2022년 12월 인기 걸그룹 뉴진스(New Jeans)의 뮤직비디오 ‘Ditto(디토)’에 캠코더로 영상을 촬영하는 장면이 담기면서 2000년대 초반 디지털카메라와 캠코더의 인기가 급상승했다. 국내외 스타, 인플루언서들이 캠코더나 디카를 사용하고 있는 장면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파나소닉 디 스냅으로 박지수씨가 촬영한 사진.
파나소닉 디 스냅으로 박지수씨가 촬영한 사진.

◇흐릿해서 오히려 좋아= 박지수(25·창원시 의창구 중동) 씨는 옛 디카로 찍은 사진을 블로그에 업로드 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디카와 캠코더만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SNS 계정을 드나들며 찾아낸 파나소닉의 ‘디 스냅’을 들고 다니며 촬영한다. 매년 휴대폰 사진을 인화해 앨범을 만들 만큼 사진으로 기록하는 걸 좋아했는데 2년 전 다회용 필름카메라를 선물받은 뒤로 특유의 복고 감성에 빠지게 되면서 자연스레 디지털카메라와 캠코더에도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중학교 땐 이런 디카들이 촌스럽다고 생각했고, 더 선명한 휴대폰 카메라로 찍는 것을 선호했는데 지금은 어플이 따라 할 수 없는 필름카메라로 찍은 느낌을 주는 이 디카들로 찍는 것이 매력적이라 생각했다.

박씨는 “디 스냅을 출고가보다 비싼 가격에 구매했지만 얇은 몸체에 희소한 주황 색깔의 카메라인 데다 mp3플레이어 기능도 갖췄고 무엇보다 필름카메라와 같이 흐릿하고 지직대며 나오는 결과물이 가장 마음에 든다”며 “버튼을 눌러 조작하고 화면과 카메라 렌즈를 돌려가며 촬영하는 것도 재밌고 1G에 불과한 메모리 용량 때문에 찍고 지우는 번거로움마저 흥미롭다”고 말했다.

그는 이 제품 이외에도 니콘 쿨픽스3200, 소니 사이버샷, 후지필름J25 등의 디카와 JVC, 삼성 비디오카메라도 가지고 있다. 사진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아버지 덕에 귀한 매물도 구할 수 있었다.

디카 캠코더들
디카 캠코더들

그는 “옛날 걸 왜 비싼 돈 주고 사냐고 하지만 써보지 않은 것에 대한 호기심이 크고, 써본 데 대한 성취감도 크다”며 “이 카메라들은 제 취향을 드러내는 소품이기도 하기에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진도 많이 찍는다. 앞으로도 다양한 디카와 캠코더를 써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장롱 속에서 잠자던 디카들을 발견하고 Y2K 감성으로 디카를 꾸미는 이들도 늘었다.

이다정(31·창원시 마산합포구) 씨는 설 연휴 본가에서 옛 디카를 발견하고 다시금 들고 다니기 위해 카메라 앞면을 스티커를 붙여가며 디카를 꾸몄다.

이씨는 “후지필름 파인픽스 Z3는 15년 전 제품이라 작동이 제대로 될까 걱정했는데 카메라가 켜지니 효과음부터 반가웠고 당시 찍었던 사진들도 만나 추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며 “일부 고장이 나서 영상 촬영만 가능하지만 하나뿐인 카메라로 이때 감성으로 일상을 기록하고 싶다”고 밝혔다.

박지수(25)씨가 창원이 한 카페에서 파나소닉 디스냅으로 영상을 촬영하고 있다.
박지수(25)씨가 창원이 한 카페에서 파나소닉 디스냅으로 영상을 촬영하고 있다.

◇업계에도 문의 증가= “폰 사진이 너무 깨끗하게 나오는 게 싫다는 거예요. 그래서 성능이 떨어지는 15년 전 제품을 찾는 거지.”

15년~20년 전 디카와 캠코더를 찾는 이들이 늘어난 것은 지역 카메라 전문점에서도 인지하고 있다. 74년째 운영되고 있는 ‘태양카메라’에서는 최근 2년 새 필름 카메라 손님들이 늘어 아날로그 카메라 관련 매출이 디지털카메라들을 역전한 데 이어 옛 디카, 캠코더 구매·수리 문의가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창원 태양카메라 장영만(68)씨는 “휴대폰 카메라 화소가 워낙 높다 보니 ‘똑딱이’라 불리는 콤팩트 디지털카메라가 생산되지 않은 지 꽤 됐다. 마지막에 팔릴 땐 20~30만원 대애 팔렸는데 수리비가 더 드니 고장으로 갖고 온 것들을 많이 버렸는데 지금 와서 다시 찾는 이들이 늘었다”며 “디지털카메라는 수명이 10년 안쪽으로 짧은데 아직까지는 생산된 물량이 일부 있는 것으로 안다. 반면 캠코더는 배터리, 본체 헤드 등 부품, 기록할 테이프도 생산이 거의 되지 않기에 쉽게 취급할 수 없고 수리도 어렵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완벽히 고치지는 못해도 촬영하고 보는 정도에서 만족하는 손님들도 있다.

양산 대한카메라 오대환 (58)씨는 “1년 전부터 20대 초중반 분들이 카메라들을 들고 와서 ‘수리해 달라’는 요청들이 생겨나고 있다”며 “ 집에 있는 100만 화소도 되지 않는 카메라들을 들고 방문하곤 하는데 고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화면으로 대상을 보는 정도만으로도 흡족해한다”고 부연했다.

글·사진= 이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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