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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지금이 가장 이른 때이다- 손봉출(창녕 영산초등학교 교감)

기사입력 : 2023-01-31 19:46:18

쉰 살이 넘어가니 주름과 흰머리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늘어난다. 얄밉게도 요즘 카메라는 주름과 흰머리를 잘도 잡아내어 사진 속 내 모습은 거울을 볼 때보다 더 늙어 보인다. 그래서 사진찍기가 꺼려진다. 가족여행을 가서도 사진찍기를 싫어하는 나를 향해 딸들이 한마디 한다.

“지금이 가장 젊을 때에요.”

그러면서 몇 년 전에 찍은 사진을 보여주는데 저 정도면 찍을 만하다 싶을 만큼 내 모습이 젊어 보인다. 알고 보니 그때도 늙어서 찍기 싫다면서 억지로 찍은 사진이다. 이후로 나는 썩 내키지는 않지만 마땅한 핑계를 더는 찾지 못해 함께 사진을 찍는다.

까짓것, 사진이야 찍어도 그만, 안 찍어도 그만이겠으나 더 늙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게 있다. 따져보면 수없이 많겠으나 내가 생각하는 것은 세 가지이다.

먼저, 건강이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니 두말하면 잔소리이지 싶다.

다음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돈이다. 나는 청빈을 덕목으로 여기는 유교문화를 받고 자란 탓인지 돈을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나이가 들수록 돈만큼 중요한 게 없어 보인다. 인간다운 노년을 보내기 위해 열심히 모아 둘 필요가 있다.

마지막 한 가지는 취미이다. 건강과 돈을 가졌으나 할 게 없으면 삶이 지루해진다. 아마 여기까지는 대체로 공감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취미를 가질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노년을 위한 취미인 만큼 조건이 조금 까다로워진다. 힘이 많이 들지 않아 오랫동안 할 수 있어야 하고 몸과 마음을 함께 가꾸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이 조건에 알맞은 취미로 추천하고 싶은 게 문화유산 답사이다.

답사를 다니면 많이 걷게 되니 저절로 건강해지고 안목을 넓히기 위해 책을 읽게 되니 수양이 된다. 혼자 떠나면 사색의 시간이 되고 여럿이 함께 떠나면 만남의 시간이 된다. 나라 전체가 박물관이라는 우리 땅에는 찾는 이에게만 보이는 보물이 널려있다. 반려견 같은 돌사자들이 웃으며 반겨주고 아름다운 천인들이 흥겨운 풍악을 울려준다. 전국에 고루 건립된 국립박물관은 관람이 무료인데다 여름엔 에어컨을, 겨울엔 난방기를 빵빵하게 틀어준다.

어제 박물관을 다녀온 내가 오늘 박물관에 간다고 하니 막내딸이 또 가냐며 핀잔을 준다. 이번엔 내가 나설 차례이다.

“넌 저번에 영화 봤다면서 또 보러 가니?”

“…….”

자주 만나는 사람끼리 할 말이 많듯이 자주 보는 사람에게 볼거리를 더 많이 주는 것이 문화유산이다. 유홍준 교수가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말했던 것도 이런 의미였을 것이다.

자격증을 따놓으면 문화관광해설사나 문화재 지킴이 같은 봉사활동을 하며 용돈을 벌 수도 있으니 잘하면 노후에 필요한 세 가지를 다 준비하는 셈이 된다. 행여 문화유산을 보는 안목이 없거나 준비가 늦었다고 여겨 망설인다면 딸들이 나에게 했던 말을 들려주고 싶다.

“지금이 가장 이른 때에요.”

손봉출(창녕 영산초등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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