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사람속으로] 정수미 경남경찰청 여성대상범죄특별수사팀 전문수사관

경남 ‘여형사 1호’… “성폭력 수사보다 더 중요한 건 피해자 보호”

2001년 거창경찰서에서 경찰 첫발

기사입력 : 2023-02-01 20:59:29

“10년 넘게 지켜봤는데, 한마디로 이 분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믿고 신뢰할 수 있는 경찰이죠. 어떤 피해자는 ‘경찰이 이렇게까지 다정할 줄 몰랐다. 경찰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가지게 되었다’고 말하더라고요. 수사를 진행하며 성폭력 피해자를 대하는 모습에서 성인지 감수성을 가지고 임하는 모습은 다른 분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 합니다.” (김선희 함안 성·가족상담소장)

“자기 업무인 성폭력 수사를 더 잘하기 위해서 야간에 대학원에 나가 심리 상담을 배우고 끊임없이 노력하더라고요. 후배지만 본받을 게 많은 경찰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장협의회 양성평등복지국장을 맡으면서 조직 전체의 양성평등을 위해서도 애쓰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조형래 전 경남경찰청 직장협의회장)

성폭력·가정폭력 피해자를 돕고 있는 상담소장과 경찰 노동조합 격인 직장협의회장을 지낸 30년 차 경찰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경찰관은 바로 경남경찰청 여성청소년과 여성대상범죄 특별수사팀 정수미(49·경위) 전문수사관이다.

경남경찰청 여성대상범죄 특별수사팀 정수미 경위가 자신이 수사한 성폭력 범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경남경찰청/
경남경찰청 여성대상범죄 특별수사팀 정수미 경위가 자신이 수사한 성폭력 범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경남경찰청/

◇경남 여형사 1호… “수사 잘하는 경찰”= 정수미 경위는 22년 전인 지난 2001년 거창경찰서 수사지원부서에서 경찰 생활을 시작했다. 이듬해 창원중부경찰서 형사계로 자리를 옮겼는데, 이때 그를 따라다니는 첫 수식어가 생겼다. 바로 경남경찰 ‘여경 1호 외근 형사’. 이때부터 수사 경력이 시작됐고 ‘여형사 1호’는 23년 차에 접어든 지금도 그를 따라다니는 훈장이 됐다.

20년을 수사 부서에서만 근무하고 그중에서도 15년을 외근 수사 경력으로 채운 그는 경남경찰 중에서도 수사를 잘하는 경찰로 손꼽힌다. 특히 성폭력 범죄 수사에 정통하다. 지난 2002년부터 2011년까지 창원중부경찰서 형사과 강력팀에서 근무한 그는 2014년 7월 같은 경찰서 여성청소년과 성폭력수사팀이 창설되자 자리를 옮겨 본격적인 성폭력 수사를 맡기 시작했다.

성폭력 범죄 수사 능력을 인정받은 정 경위는 지난 2018년 8월 첫 출범한 경남경찰청 여성대상범죄 특별수사팀으로 또 한 번 자리를 옮겨 수사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하기 시작했다. 특별수사팀은 출범 첫해 미투 운동이 문화예술계 등으로 퍼진 당시 아동·장애인 및 친족간 사건 348건(구속 21명, 불구속 177명)을 처리했고, 미성년 단원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은 도내 극단 대표를 전국에서 처음으로 구속하기도 했다. 이러한 성과로 특별수사팀은 이듬해 한국여성변호사회에서 여성과 아동의 인권 신장에 기여한 기관과 단체 등을 선정해 수여하는 상인 제5회 여성아동인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경남경찰청에서 5명밖에 없는 성폭력 전문수사관이기도 하다. 정 경위 개인적으로도 지난 2021년 말부터 지난해 말까지 1년 동안 초등학생 상대 성폭행 범죄 등 사회적 약자 대상 성폭력 범죄 65건(72명)을 수사해 주요 피의자 15명을 구속시키는 성과도 올렸다. 이 기간 그는 경남 최초로 자치단체장 성 비위 사건을 처리해 검찰의 기소까지 이끌어냈고, 하동군의 집단 하숙형 서당에서 발생한 학교폭력과 관련해선 학생들을 체벌하고 폭행한 혐의 등으로 훈장 2명을 구속시키기도 했다. 1년에 맡는 사건만 100건 이상, 일주일에 3~4일은 늘 외근인 정 경위는 늘 바쁘다. 인터뷰를 진행한 지난달 27일과 30일에도 현장 출동을 위해 양해를 구하고 인터뷰를 서둘러 마칠 정도로 발에 불이 날 정도였다.

정 경위는 “일반적인 형사 사건과 달리 성폭력 사건은 다른 범행 현장에서 수집할 수 있는 객관적인 증거 자료인 CCTV나 목격자가 없는 게 대부분이라 초동 조치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이때 피해자의 적극적인 협조 없이는 증거 확보 자체가 어렵다”며 “‘피해자 중심 수사’를 늘 염두에 두고 임한다”고 말했다.

경남경찰청 여성대상범죄 특별수사팀 정수미 경위가 자신이 수사한 성폭력 범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경남경찰청/
경남경찰청 여성대상범죄 특별수사팀 정수미 경위가 자신이 수사한 성폭력 범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경남경찰청/

◇수사보다 더 중요한 건 “피해자 보호·지원”= 정 경위가 속한 여성대상범죄 특별수사팀은 여성 대상 범죄에 대한 국민 불안감 해소와 대응 능력을 높이기 위해 13세 미만 아동과 장애인 성폭력 사건, 장애 여성, 아동, 친족 간 성폭력 사건뿐만 아니라 중요 가정폭력 사건도 담당하고 있다.

성폭력 수사를 잘하는 경찰인 그가 수사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더 뛰어난 역량을 드러내는 분야는 바로 피해자 보호와 회복 지원이다. 여성 대상 범죄가 발생하면 피의자를 법에 따라 처벌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범죄 이후 사회적 약자인 피해자와 그 가족에 대한 심리·의료지원 활동이 더 중요한 까닭에 더 애를 쓴다. 수사 역량을 혐의 입증을 위한 수사뿐만 아니라 보호와 지원으로까지 범위를 넓히는 것이다.

그는 “수사 진행 과정에서의 심리적·의료적 지원이나 범죄 피해자 지원제도를 이용한 경제적·물질적 지원을 연계하는 건 물론 각각의 피해자와의 긍정적인 라포(상담이나 교육을 위한 전제로 신뢰와 친근감으로 이루어진 인간관계) 형성으로 피해자의 심리적 회복에 좀 더 관심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성폭력 수사에서 중요한 역량인 만큼 그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정 경위는 성폭력 사건 피해자 조사 전담 업무를 하면서 간절함과 절실함을 느껴 사이버대학에 진학해 틈틈이 상담심리를 공부해 학위를 취득하고 심리상담사 1급 자격증도 지난 2017년 땄다. 오로지 성폭력 전문수사관으로서의 역량을 위해서였고, 그러면서 피해자의 입장을 더 헤아릴 줄 알게 됐다.

김선희 함안 성·가족상담소장은 “경찰이라고 하면 딱딱하고 권위적인 데다 죄를 입증하는 것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 경위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세심하게 다가가고 배려하는 면에서 남다르다”며 “그런 노력 덕분에 범죄 피해자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경찰이다”고 칭찬했다.

그의 노력과 진심을 여성계도 모를 리 만무하다. 정 경위가 몸담고 있는 경남경찰청 여성대상범죄 특별수사팀이 여성아동인권상을 수상한 데 이어 햇수로 4년 뒤인 지난달 31일에는 정 경위가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가 수여하는 ‘2022 여성인권 보장 디딤돌’에 선정돼 상을 받았다. 이 상은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가 시민감시단 사업으로 성폭력 사건의 수사·재판 과정에서 피해 생존자의 인권을 보장하는데 기여한 사례를 선정해 주는 상이다. 정수미 경위는 위력 성폭력과 스토킹의 특성을 이해하는 것은 물론 성인지 감수성을 갖고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사건을 수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고 협의회는 밝혔다.

정수미(앞줄 가운데) 경위가 지난달 31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가 수여하는 ‘2022 여성인권 보장 디딤돌’ 시상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정수미(앞줄 가운데) 경위가 지난달 31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가 수여하는 ‘2022 여성인권 보장 디딤돌’ 시상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성폭력 전문수사관인 정 경위는 이 상을 ‘노력상’이라 불렀다. 그동안 자신과 팀원들의 노력이 있어 받을 수 있었던 상이고, 상을 받았으니 더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그가 받은 ‘최고의 상’은 따로 있는 듯하다.

“성폭력 수사라는 게 성과가 겉으로 드러나는 게 아니고 많은 인내심도 필요한 일이라 때론 지치고 힘들기도 하지요. 누구보다 큰 아픔을 겪었을 피해자들이 아픔을 극복하는 모습을 볼 때 그 어떤 상보다 더 특별한 상을 받은 기분입니다. 앞으로도 제가 디딤돌이 되고 싶습니다.”

도영진 기자 dororo@knnews.co.kr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도영진 기자의 다른 기사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