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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지역 참일꾼 옥석 가리기- 이병문(사천남해하동 본부장)

기사입력 : 2023-02-07 19:47:44

자치(自治), 참 듣기 좋은 말이다. ‘주민이 스스로 다스린다’는 의미는 명분이 있다. 그러나 독자 생존은 자유시장의 논리에 의해 결정된다. 이를 간과하려는 경향이 짙다. 정치적인 이유 등으로.

자치에 분권까지 보태면 명분이 더 쌓인다. 그러나 자치나 분권은 예산이라는 정책적 수단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예산은 당위성이라는 명분(이론)을 바탕으로 권력(현실)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교집합을 이룰 때 얻는 결과물이다.

지방자치니 분권이니 하는 것은 이 같은 지역 이기주의의 결과물이다. 한정된 예산인 국비를 누가 더 많이 확보하여 지역 주민의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드느냐는 게임.

선거는 그 게임을 가장 잘할 것으로 보이거나, 그런 믿음을 주는 실력자를 뽑는 투표 행위다. 기초부터 광역의원, 시장·군수, 광역 시·도 단체장, 국회의원, 대통령까지.

링에 오를 인물은 나이·성·직업·학력·전과·경력 등 여러 잣대로 분류가 가능하다. 필자는 두 부류만 예로 들고 싶다. 서울 중심주의와 지역 중심주의 인간.

이 구분에선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초·중·고를 다녔느냐는 점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현실적으로 보면 전자는 서울에 자가(自家)가 있고 고향엔 전세로 산다. 고향에서 선출직을 하고, 공천을 못 받거나 선거에서 지면 고향을 쳐다보지도 않고 서울로 돌아가는 사람. 이 부류는 묻힐 곳도 자가가 있는 서울이다. 후자는 서울에 집이 없거나 전세로 살지만 고향에는 자가가 있다. 죽으면 묻힐 곳도 당연히 고향이다. 자가의 위치가 인물을 선택하는 기준은 아니다. 주거의 자유가 있는 나라이니. 그러나 이 글을 읽는 순간이라도 그동안 자신이 투표한 전직 도지사, 국회의원, 시장·군수 등이 지금 어디에 사는지, 이번 설에 얼굴이나 봤는지 되새겼으면 한다.

‘고향 팔이’에 속아 사람을 뽑으면 높은 급여에 눈이 멀어 샐러리맨으로 전락하게 될 당선자를 만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고향의 미래는 안중에 없다. 오직 ‘돈이 되는’ 개발에 매몰된다. 반대 유권자에겐 거대 담론을 들이댄다. 나의 삶이라는 초라한 현실은 거대한 담론에 묻혀 설 자리를 잃게 되고 임기 동안 침묵해야 한다.

그뿐인가. 정작 주말이면 가족이 살고 있는, 나중에 돌아갈 서울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주민의 삶을 속속들이 안다고 말하기 어렵다. 매일 보는 공무원, 회견장에 서는 단체 회원 등 적당히 인사하고 악수하는 소수의 사람이면 그만이다. 자신을 뽑아준 선거구엔 소홀하게 되고 그런 시간이나 공간만큼 서민의 삶은 곪는다.

다행히 모두가 이 범주는 아니다. 간혹 예외도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상당수가 이 프레임에 해당된다.

많이 배운 사람이 상대적으로 실패 확률이 낮다는 반론도 있다. 맞다. 그러나 중앙이든 지방이든, 여당이든 야당이든, 당론으로 모든 것이 결정된다. 또 진영 대결이 첨예한 상황에서 한 사람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제한적이라는 점은 그 반론마저 힘을 잃게 만든다.

지금부터 천천히, 찬찬히 살펴보자. 낙하산이라도 아닌, 아니면 고향에라도 묻힐, 그래서 퇴임하거나 선거에 떨어진 후 얼굴이라도 볼 수 있는 사람인지를. 물론 부족한 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 일이니 믿고 기다려주면 ‘큰 바위 얼굴’로 성장한 행정가나 정치인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소리 없이 봄이 오듯이. 소박한 믿음을 가져본다.

이병문(사천남해하동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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